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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과거사 2012/04/10 21:54

경찰과 소방서 “왜 우리한테 전화를 하세요?”

딩스&뚱스 in 아메리카 - 신고정신

위의 웹툰을 보면 누군가 지나가며 신고한 것을 경찰이 와서 확인하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미국은 정말 사소한 것조차도 확인하는데요. 물론 그들 중에도 자신의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 사람도 있지요.

오늘 뉴스 시청 중에 조현오 전 경찰청장의 기자 회견 답변 중에 나온 말 때문인데요, 경찰도 위치 추적권이 있다는 것이었죠. 이 때문에 문득 지난 일 하나가 급히 떠올랐지요.

"위치추적은 119 통해 하라고 말해… 우리가 알아내 경찰에 알려줬다"

동생이 수학 학원에서 일하는데, 회식 때문에 늦게 온다며 부모님께 연락이 안되니 제게 대신 전해달라고 하더군요. 저는 알았다고 끊었는데, 그날 급하게 생긴 약속 때문에 나가서 생각보다 집에 늦게 도착했어요.

집에 도착하니 부모님께서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 계셨고, 알고 보니 동생이 올 시간이 되었는데 오지 않아서 경찰서와 소방서에 전화를 했는데, 연락이 닿지 않는다는 답변을 받고서 불안해 하셨다더라고요.

경찰서에 신고해서 접수는 했지만 경찰에서는 몇 번의 연락만하고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답변했고, 이에 아버지께서는 위치추적을 요구하셨는데, 그런걸 왜 자신들에게 하냐며 소방서에 하라고 했다더군요. 그래서 소방서에 전화 했더니 그걸 왜 소방서에 전화했냐고 하더라며 마음이 불편해졌다고 하시더라고요.

결국 동생이 노래방에서 나와 전화하는 것으로 해프닝이 끝났는데요. 만약 이 때 제 동생에게 같은 일이 벌어졌다면....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네요.

이번 사건으로 경찰청장이 물러났다고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물러나지 못하도록하고 그 자리에서 책임을 지도록 장기 감봉이라던지 진정 책임을 절감할 수 있도록 법이 개정되는 것이 좋지 않나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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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과거사 2011/02/23 04:37

얼마나 깝깝했을까?

요즘 호주로 워킹 홀리데이 가려고 준비하면서 알게 된 블로그 글을 읽으면서 과거의 나를 다시 돌아보게 되었어요.

난 어땠지? 그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어땠을까? 등의 생각을 하면서 그 때 누군가 콕 찝어 뭐가 잘 못 됐고 이렇게 해야 하지 않을까 하고 얘기했다면 달랐을까 생각하 보네요.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어리고 얼척 없어서 그 때의 내가 그 블로그 주인과 함께 일했다면 아마도 엑스만큼은 아닐지라도 욕 좀 먹어서 더 오래 살게 됐을 거라고 확신해요.

ㅋㅋ 정말 출국 전날인데, 필리핀 몇 번 갔다 왔을 때보다 훨씬 떨리고 잠도 안 오고, 어떤 걸 더 알아봐야할까 하고 생각만 계속 이어지네요. 여전히 부족한 게 많아서 다른 사람에게 상처나 주지 않을런지도 걱정되고, 뭐 지금까지 그런 걱정들 하긴 했지만 이렇게 잘 살아 왔으니 잘 되겠죠!!

군을 직업 삼아 생활했던 4년간의 기간보다 더 재미있을 것 같은 기대감과 나이가 많아지면서 생긴 두려움이 복합적으로 다가와요.

하아~ 저 잘 할거에요!

그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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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과거사 2010/12/27 17:58

태어난 날의 풍경

정점관측으로 기억하고 싶은 것들 / 신인왕제색도에서 알게된 과거 관측기록을 살펴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어 조회해 보았지요.

그날은 하루종일 비가 왔나봐요 그 다음날도 그 전날도 비가 계속되었는데, 아침 9시부터 저녁 9시까지 12시간 동안 엄마의 배를 아프게하며 나왔다고 하더라고요.

비도 오고 배도 아프고 첫 아이라 무척이나 아파하셨을 텐데, 그렇게 힘겹게 나와서는 의사의 가운데 오줌세례를 배풀며 힘차게 울어제꼈다니 그나마 12시간의 고통이 기쁨으로 바뀌는 순간이었을까요?

하아~ 오늘은 눈도 내리고 오랫만에 집에 있으면서 집 앞 눈도 좀 치워주니 기분도 상쾌하고 좋네요.
여러분이 세상에 나온 날의 풍경은 어떤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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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과거사 2008/03/06 16:16

기도의 능력

먼저 이 글은 개신교인의 입장에서 작성한 글이며, 개신교인이 아닌 경우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을 가지고 있다. 개신교인이라 하더라도 이성적으로만 접근하려고 하는 시도로는 수용할 수 없을 가능성이 높다. 부디 자신의 이해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된다면 읽지 않거나 읽기를 중단 하기를 권한다. 읽더라도 이에 대한 비난은 정중히 거절하는 바이다.
기도의 능력을 가볍게 여기는 세태확실히 오늘날 세상은 기도의 능력을 상실해가고 있다. 우리들은 기도의 능력을 가볍게 생각한다.
(중략)
기도회에 모일 때 사람들은 저마다 한 보따리씩 견디기 힘든 삶의 기도제목들을 가지고 온다. 그리고 기도제목 보따리를 풀어 하나님께 보여드린다. 그러나 기도가 끝날 때 그들은 다시 기도제목 보따리를 주섬주섬 싸면서 하나님께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나님! 제 이야기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라님도 해결 못할 문제인데 당신이라고 뭐 뾰족한 수가 있겠습니까? 아무튼 감사했고 심려끼쳐드려 죄송합니다. 내일 새벽에 같은 문제로 또 찾아뵙겠습니다."
그들은 기도하면서 자신의 기도가 응답되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신앙인의 불신앙이다. 때때로 기도는 결가부좌의 자세로 앉아 하는 정신수양 혹은 기수련, 마인드 컨트롤 정도의 것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기도의 능력을 이렇듯 폄하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복이 채워질 까닭이 없다.
출처 : 채워주심[각주:1]
성경에 보면 나아만 장군의 이야기를 그린 부분이 있다. 나아만 장군은 하나님은 믿지 않았지만 문둥병을 고침 받는다. 그에게 있었던 것은 믿음이다. 물론 처음부터 믿었던 것은 아니지만, 신하의 말에 일리가 있다하여 엘리사의 말대로 정말 믿고 요단강에 들어가 문둥병이 깨끗하게 낫는다.
필자도 기도의 능력을 체험했는데, 등록금이 채워지는 응답을 받기까지 참으로 오랜시간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괴로워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정말로 기도가 이루어질까하는 의심도 간간하게 들었지만 끝까지 채워주실 때까지 기도하고 기다렸다. 그랬더니 정말 등록금이 마련되었고, 무사하게 졸업할 수 있었다. 이 전에도 자잘한 체험을 주셨지만 가장 최근의 큰 체험이기에 나누려는 목적으로 기록하였다.
물론 많은 부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삶을 살기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안되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모든 것이 다 되는 것만은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하고 살면서 믿을 가져야만 기도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다.


  1. 이상혁, 채워주심, (서울 : 규장, 2007), pp.106-107.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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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과거사 2008/02/21 06:40

웹표준 지키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진학을 생각하지 않고 웹디자이너로 한 회사에 취직하게 되었다. 그 이전에 학교에서 이런 저런 경로들을 통하여 독학하였던 실력을 바탕으로 나름의 자신감을 가지고 취업을 하였다.

정보산업고등학교에 진학한 이유가 관련 분야에서 일찍 일을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프로그래밍에도 관심이 있고, 그래픽 분야에도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그 두 분야를 통해 일을 할 수 있는 분야가 당시의 웹디자이너였다.

웹디자이너로 활동하기 전에도 홈페이지 제작 관련해서 나우누리 웹디동의 활동이 있었고, 그들과의 교류를 통해 다양한 정보를 얻기도 하였다. 그러는 가운데 웹표준이라는 용어를 알지는 못했지만 익스플로러와 넷스케이프, 이 두 브라우져에서 똑같이 보일 수 있도록 코딩을 하는 것이 웹디자이너로서의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했다.

그 외의 브라우져는 그다지 많이 쓰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기도 했었고, 개인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브라우져인 넷스케이프와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브라우져가 익스플로러였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일년여를 관련 직종에서 실무를 했지만, 일을 그만두고 군에 입대하고 나서는 웹디자인을 그만두고 군에서 맡겨진 임무에 충실하기 위해서 별도의 활동을 하지 않았다. 군에 입대하면서 웹디자이너로서의 앞길을 회의적인 생각으로 바라보게 되었기 때문에 관심이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

그와 함께 웹표준에 대한 관심도 함께 적어졌다. 그저 주로 쓰는 브라우져이든지 잘 보이게만 하면 되는거지라는 생각으로 변해갔다. 그렇게 군에서의 생활이 마무리 되어가던 시점에서 Firefox에 대한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직접 관련 소식을 접해서 알았던 것이 아니라 네트워킹 분야에서 일하는 친구가 컴퓨터에서 사용하는 브라우져가 파이어폭스였기 때문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모질라 커뮤니티에서 웹표준에 대한 정보를 접하면서 다시 생각이 바뀌어지게 되었다.

표준을 지킨다는 것은 결코 자원의 낭비가 아니다. 그것은 효율의 문제이고 미래의 우리를 위한 예방 활동이다.

표준을 지키는 것은 우리가 법규를 지키는 것과 같이 생각해야 할 문제가 아닌가 싶다. 아무도 보지 않는다고 지키지 않아도 된다며 무시하고 마음대로 했을 때 당장은 문제가 생기지 않지만, 그런 불법에 익숙한 습관으로 인해 법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할 때에 원망조차 할 수 없는 문제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닐까?

우리의 몸에 규칙적인 운동이나 식사를 하지 않았을 때 당장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지속적이고 반복되었을 때 건강상에 문제가 생기고 몸에 이상이 생기는 문제와 같다.

지금 당장 공부하지 않고 게임이나 유흥을 하고 관심있는 부분만 공부하는 학생이 가지게 될 좋지 않은 성적은 우리가 지금 당장 웹표준을 지키지 않았을 때 가지게 될 결과가 같지 않을까?

웹표준은 지금 당장은 힘들지만 꼭 지켜야 할 필수요소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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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과거사 2008/02/20 22:45

돌들 모두 모아와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최대 공약으로 들고 나왔던 한반도 대운하 이야기는 벌써 3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논의 되고 있다. 이전에도 민노씨는 몇 번에 걸쳐 관련 포스팅을 해왔는데, 문득 이 글 <한반도 대운하(경부대운하)에 대해 알고 싶은 두 세가지 것들 - [피디수첩] 보도를 토대로>을 보니 군에 있을 때의 한 지휘관이 생각이 났다.

그는 처음으로 입대해서 자대배치를 받고 간 부대에서 대대장이었는데, 보통 대대장이 중령이었던 반면에 그는 소령의 계급을 달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정확하게 말하면 소령(진)[각주:1]이었다. 이제 곧 중령으로 진급하기 위해 명령을 받은 상태였다는 것이다.

곧바로 부사관(하사)으로 입대했기 때문에 아무것도 모른채 부대를 배치 받아 대대를 거쳐 중대로 갔는데, 대대장에 대해서 말이 많았다. 대대장은 조경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는데, 주어진 부대운영비를 손대지 않고는 조경을 할 수 없으니 나름 돈을 별도로 들이지 않고 꾸미기 위해 전 부대에 있는 돌들을 모아오라고 지시를 했던 것이다.

당시 필자는 대대와 떨어진 곳에 영외 중대에 있었는데, 그 근방에 있는 돌들도 모아서 차로 대대까지 배달(!)을 해줘야 했었다.

어쨌든 그가 그렇게 심혈을 기울여서 부대를 꾸며(?) 가서 그의 대대 지휘관으로 임기를 마쳐가던 어느날 소속 사령부에서 높은 양반들[각주:2]이 와서 부대를 순시하는 중에 돌을 모아 만들어 놓은 여러 가지를 보이면서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던 모양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만든 것 중에 대형 물레방아에서 터졌다. 다른 조경물에 대한 설명을 듣다가는 그 곳을 지나면서 설명은 들은 그 사람은 꾸지람을 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물도 잘 나오지 않는 곳에 물레방아를 멋으로 굳이 만들어야할 이유가 있었냐는 것이었다. 부대 환경 조성도 중요하지만 부대 사정에 맞는 꾸밈을 해야 한다는 덧말이 있었다고 한다.


  1. 지금의 방식으로 표현하자면 중령(진)이겠지만 당시에는 진급되기 전의 계급에 (진)을 더해 표현했다. [본문으로]
  2. 아마 중령 이상의 계급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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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아버지 이야기

어제 저녁에 아버지를 통해 할머니를 모시고 작은 아버지 댁에 다녀오라는 특명을 받고 작은 아버지께 전화를 드렸다. 오후에는 다른 약속이 있어서 오전에 가겠노라고 통화하고는 아주 이른 시간에 잠이 들었어야 했지만, 이제 곧 정리할 여자친구로부터 호출이 있어서 얼른 그 아이의 집 근처로 가게 되었다.

이런일 때문에 새벽에 집에 돌아오니 새벽 4시였다. 차 안에 있으면서 조금 자 두긴 했지만 편하게 누워서 잔 것도 아니고 두어시간 정도 밖에 자지 못 했기 때문에 집에 들어와 잠을 청했지만 잠이 오질 않았다.

그렇게 몇 시간을 보내고는 잠이 겨우 들었는데, 9시 반에 설정해 놓은 휴대폰 알람 소리를 듣지 못하고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까지 자고 말았다.

오전에 이대 근처 작은 집에까지 가려면 서둘러야했다. 어제 저녁에 출발하면서 연락드린다고 했었는데 전화해야하는지 고민하고 있을 때 작은 아버지로부터 전화가 왔다.

이제 출발한다고 했더니 얼른 오라고 하신다. 오후에 일정이 있으신 모양이었다. 작은 아버지와는 전에 작은 일이 있어 조금 불편한 상태임에도 나름 편하게 대하려고 했지만 그 일로 인해서 전혀 불편하지 않은 상태는 아니었다.

그렇게 도착하니 졸업 선물로 양복을 한 벌 해 주셨다. 상설 매장인데 30만원이 넘는다. 작은 아버지께서 시간이 없으신 듯해서 눈에 띄는 것으로 얼른 골라 입어보고는 결정했다. 사실 양복은 저번 주에 경방필이 정리되는 시점에 싸게 2벌이나 구입해 둔 상태여서 구두를 사달라고 했어야하지만 작은 아버지의 일정에 무리를 드리고 싶지 않았다.

사실 차로 작은 아버지를 모셨을 때 길 안내하시는게 점심을 먹으러 가는가 싶어 아무말 없이 그대로 따라갔던게 화근이었을까.

그래도 문안한 디자인으로 골라서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옷을 골랐다. 타이도 하나 골라서 음식점으로 향했다.

그다지 식욕이 없어서인지 포천갈비 한 판을 시켜서 먹고는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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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인28호 쌤! 삭발은...

이 기사를 보면서 생각이 났는데, 머리카락 하면 생각나는 일이 있다.

때는 필자가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몇 주가 흐르지 않아서 생긴일이다. 반이 정해지고 학기가 시작되고 담임 선생님들은 각 반의 학생들의 얼굴과 이름을 익히기 바쁜 시기인 것이다.

처음에 배정된 반에 들어앉아 맞이했던 담임 선생님의 미소에 속았다. 웃는 얼굴은 미소가 아니라 사악함으로 변해버렸다. 단 며칠만에 일이었다.

무슨 일인가 하면 당신의 학창 시절에는 여름에도 시원하게 빡빡머리를 하고 다녔다는 것이다. 그런 발언을 학기가 시작되고 여름이 다 되어 가는 시기에까지 몇 번인가 했는데, 아~ 그렇구나 싶었다.

그런데 문제는 필자가 머리를 빡빡밀고 학교에 등교한 날에 발생했다.

하필 그 날 다른 학생도 머리를 빡빡 밀고 온 것이다. 그런데 그 친구가 좀 논다는 친구였다는데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지금 생각해 본다.

대뜸 반에 들어오시더니 조회를 하면서 삭발한 녀석들 왜 그랬냐고 하면서 맨 머리를 손바닥으로 다다다다다다다다닥~ 치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서 무슨 반항하는거냐 어쩌냐 하면서 계속 때린다. 아~ 맨 머리를 맞은 건 둘째 치고 당신께서 시원하다고 해서 한번 밀어본 것인데 이런 경우가 다 있나 싶어 황당했다.

그 당시만해도 매우 내성적이어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다른 친구는 좀 놀긴 했어도 성격이 매우 온화하여서(?) 가만히 있었다. 웃어 넘기고 말았다.

아~ 정말 그 머리를 어떻게 자른 머린데!!

삭발을 하고 집에 들어선 순간에 그 눈물을 잊을 수가 없다. 조모님께서 동거하고 계셨는데 집안에 들어서자 눈빛이 바뀌시더니 아무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왜 그러시냐고 여쭈우니 말 없이 눈물을 그렁이신다.

왜 그러셨을까.. 왜 눈물을 그렁이셨을까..


쨌든 철인28호 쌤~ 그땐 정말 너무 하셨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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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과거사 2007/11/26 02:10

난 담배가 죽도록 싫다

필자가 담배에 대해서 이토록 거부감을 일으키는 것은 어린 시절로부터 담배와 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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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적으로 담배가 싫어서 쓰게 된 글들은 위와 같다.

왜 친하지 않게되었냐면, 필자의 부친께서는 당시 건축토목기사로 건축현장을 다니셨다. 건축현장에는 흡연이 공공연하게 행해지는 곳인데, 왜 담배 냄새를 싫어하게 됐냐는 의문을 가지게 되리라 생각된다.

때는 필자가 3살 때로 돌아간다. 아버지께서는 어린 아들 녀석이 심부름을 할 수 있게 되자 기쁘셔서는 담배 심부름을 종종 시키셨다. 아들아~ 담배좀 가지고 오너라~

그렇게 몇 번을 잘 가지고 오는 아들이 대견스러워 계속 시키셨는데, 어느날엔가는 이 어린 아이가 담배에 불을 붙여가지고 오더란다.

아뿔싸! 아버지께서는 그날로 담배를 끊기로 작정하셨다고 한다.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집안에서의 흡연자는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음식점에서 누군가 흡연을 하면 얼굴이 벌겋게변해 죽을 듯이 기침을 하곤 했다.

이런 사실은 군에 가서도 변함 없었는데, 다행인지 비흡연자인 중대장이 부임해와서 얼른 행정직으로 올라가 버렸다. ^^

여차 저차해서 담배냄새와는 여전히 친하지 않다!

게다가 후각이 꽤나 예민하기 때문에 괴롭다.

앞으로 인천문화예술회관에서 연극을 얼마나 볼 지는 모르겠지만, 필자와 같은 비흡연자들의 쾌적한 공연 관람을 위해서라도 끝까지 투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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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 좀 줄게

"북한 삐라 주워와도 연필 안줘요"를 보자마자 생각난 안 좋은 추억이 하나 있다.

때는 지금으로부터 약 20년이 조금 안된 때였는데, 당시에 잘 놀던 친구 둘과 함께 놀이터로 산으로 놀러다니던 때의 이야기이다.

살았던 동네가 성신여고가 있는 산동네였는데, 친구들과 놀다가는 한 친구가 김일성의 사진이 있는 전단지를 주웠다. 그런데 이 친구 주워서 그대로 경찰서에 가져갔으면 좋았을일인데,
주웠다고 자랑을 하고 다녔다. 주운 것이 달랑 한장이기는 했지만 삐라를 주우면 학용품을 받는다는 사실을 학교 선생님으로부터 들어 알게 되고 얼마 되지 않아 주웠기 때문에 더 기뻐했고 그런 이유로 자랑을 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런데 자랑이 화근이 되었다. 동네에서 놀던 한두살 위의 형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좀 보자며 달라하여 줬더니 그대로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물론 경찰서에 가져갔을 거라며 황당해하는데 금새 경찰서에 다녀온 그 형이란 아이는 연필 한다스를 받아왔다. 그래서 우리들과 마주칠 것을 예상하지 못했는지 의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조금은 미안했는지 연필 좀 줄게 라며 받은 연필 중에서 몇 자루를 주는 것이다.

그 형이라는 아이 뻔뻔하게도 마치 자신이 인심이라도 쓰는 것처럼 줬던 기억의 한 조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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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를 위해서라면!!

언젠가부터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연예인들은 아침방송프로그램에 나가서 폭로성 얘기를 하거나, 평소에 알려지지 않았던 비사등을 얘기하면 그날의 연예 뉴스 순위에 올라가는 현상이 부쩍 늘어났다.
일부러 관심을 모으기 위한 돌출 행동이나 발언도 심심치 않게 포털을 달구는데, 이것도 연예매니지먼트의 전형적인 방법이라고 누군가 이야기한 적이 있다.
이상은 킬크님의 포스트를 읽으면서 생각나는 에피소드가 있어서 일부 긁어온 것인데,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은데 고 이주일씨가 어떤 쇼프로그램에 나와서 토크쇼를 하고 있는 중에 방청객 중에 한 명이 올라와서 난리를 피웠던 사건이 있었다. 물론 당시에는 생방송이 아니었다는게 그 사건의 큰 문제였다.

명확하게 고 이주일 씨의 사건인지 어떤지 확인하기 위해 검색을 하다보니 다음의 비슷한 사례를 검색하게 되었다.

MC 허참의 표정 역시 난감해 질 수 밖에 없었고, 방청객과 문제를 낸 남성팀 역시 민망한 웃음을 지었다. TV를 지켜보던 전국의 시청자들은 방바닥을 구르며 웃었다.놀라운 것은, ‘가족오락관’은 생방송이 아닌 녹화방송이었는데도 이 장면이 그대로 전파를 탔다는 사실이다.

물론 필자가 기억하고 있는 사건은 이 사건이 아니다. 검색해 봐도 기억하고 있는 사건이 나오지 않는다.

쨌든 저 사건이 꽤나 오래전 사건인데, 고 이주일 씨라고 기억하고 있는것은 아마도 TV에 출현했던 인물중에 국회의원으로 출마한 뒤에 나왔던 프로그램이라고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 이주일씨가 소천하기 최소한 몇 년 전의 일로 기억하니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 쯤일 것이다.

어쨌든 해당 사건은 다음 날 아침엔가 뉴스에까지 보도된 바 있다.

하고 싶은 말은 자신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저렇게까지 하려는 것은 분명히 지나치다 싶은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물론 필자도 이런 저런 행동들이 다른 사람이 보기에 튄다고 하지만 그건 다른 사람들과 다른 것 뿐이지 의도적으로 사건을 만들거나 하지는 않는다.

한편으로 다르게 생각해 본다면 연예인들이란 인기를 - 그러니까 사람들의 관심 - 먹고 사는 존재라는 점에서 우리에게 적용해 본다면, 우리가 만약 숨을 쉬기 힘든 상황 가령 수영을 못하는데 물에 빠진 상황에서의 숨을 쉬고자 하는 몸부림 같은 것일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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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 보러 왔다냐~

2007/10/02 - [나의/과거사] - 유선여관 2에서 이어지는 글이면서 다른 제목을 달아놓은 이유는 내용이 다르기 때문이다.

필자가 태어나던 해에 관련된 이야기는 2007/06/23 - [나의/과거사] - 아들에게에 작성되어 있다. 그 후로 며칠이 안되어 조부님께서 장손의 득남 소식을 듣고 재빠르게 광주에 올라오셨다.

필자의 아버지께서는 들어오시는 조부님을 반기며 아버지 오셨습니까라고 인사를 드렸는데, 글쎄 조부님께서는 그런 아버지의 인사를 뿌리치시고는 내가 너 보러 왔다가 내 손주 보러왔지 라고 하셨단다.

아버지께서는 얼마나 서운하셨던지 지금도 종종 이야기 하시면서 서운한 감정을 얼굴, 몸짓 등으로 표현하시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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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여관 2

친조부님께서 돌아가시던 해는 필자가 초등학교 5학년 때였는데, 그 당시 그로부터 몇 년후 공원으로 지정되면서 여관 근처에 솔숲이 캠핑장이 되고 또한 공원 내라고하여서 여관과 붙어있던 상가가 뜯겨져버리는 참혹한 모습으로 변해버리고 말았다.

다행히 문화재로 지정되어 복원되고 있다니 조금은 안심이 된다.

친조부님께서는 필자를 유독 사랑해주셨는데, 그 어린 시절의 기억에도 그 사랑의 잔향이 여전히 느껴질 정도이다. 친조부님께서 그토록 사랑해 마지 않으셨던 이유는 연안 차씨 강렬공파 39대손으로, 종손이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위의 언급한 친조부님의 장례식에서도 종손으로서의 영정을 들고 여기 저기 조부님께서 돌아다니셨던 길을 되짚었던 기억이 선명하다. 그날을 유독 선명히 기억하는 것은 영정을 들고 있는 필자를 중심으로 대둔사의 승려들이 좌우로 좌~악 줄지어서서는 되짚었기 때문이고, 장례식 중간에 비가 내려 비를 맞으면서 장례를 치렀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유선여관에서의 추억은 여럿이 있는데, 조부님과 함께 하셨던 증조모님과의 추억이 또 연결된다. 이 여관은 전통가옥의 형태를 가지고 있었으며, 부엌도 전통 가옥의 부억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 부엌에는 작은 방이 딸려 있었는데, 여관의 안 주인이셨던 증조모님께서 그 방에서 지내시곤 하셨다. 밥을 짓는 아궁이와 직접 연결되어 최고의 화력을 지닌 방이기도하고 거동이 불편하신 증조모님께서 식사를 그때 그때 하시기 위한 배려이기도 하다.

여름에는 여관 뒤편에 있는 개울에서 목욕도 하고 물장난도 치고 고동도 잡곤 했다. 물론 친인척들과의 만남도 잦았다. 어린시절의 그곳은 좋은 추억들로 가득한 곳이다.

여관에서는 진돗개를 키웠는데, 그 개드로가 강아지들과 함께 놀기도 하고 키스(!)도 했다.

조부님께서 돌아가시고 나서는 공원 지정도 그렇지만, 증조모님을 모시고 서울에 올라와 함께 살게된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지금은 소천하셔서 나름 아쉬움을 감추지 못할 사건들도 적지 않은데, 이와 관련해서는 언젠가 포스팅할 기회를 엿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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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여관 1

박상민은 1989년 영화 '장군의 아들'에서 김두한 역을 맡아 데뷔했으며 영화, 드라마를 통해 꾸준한 활동을 해오고 있다. 최근엔 SBS TV 드라마 '불량커플'에 출연했다.


이 기사를 보면서 드는 생각은 이 사람 아직 결혼 안 했나아~ 장군의 아들 촬영지 이다.

첫 번째 들었던 생각은 그저 단순한 내용이어서 패쓰~ 하지만 두 번째 생각은 필자와 매우 관련이 깊다.

장군의 아들의 촬영지인 유선여관이 바로 관련의 첫 접점이다.

대둔사와 유선여관

대둔사연못한편 두륜산 자락에 자리잡은 대둔사는 영화 [서편제]의 촬영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대둔사는 한때 대흥사로 불리우다가 1993년부터 예전 이름을 찾아 대둔사로 불리고 있다.
대둔사는 우리나라 31본산(本山)의 하나로 대한 불교조계종(佛敎曹溪宗) 제22교구 본사이다.
신라 진흥왕 5년(544)에 아도화상이 창건한 사찰이다.
응진전앞 삼층석탑(보물 제320호), 북미륵암 마애불(보물 제48호), 북미륵암 삼층석탑(보물 제301호), 천불전(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48호), 서산대사 부도(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57호) 등 많은 문화유산이 산재해 있다. 천불전에 안치된 천불상은 지난 74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52호로 지정됐다. 서산대사의 유물과 유적이 보관된 표충사는 전라남도 기념물 제19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이밖에도 서산대사 유물관에는 많은 문화유적들이 잘 보관되어 있다.
유선여관경내버스 종점 바로 위쪽에는 서편제에서 판소리하는 장면이 촬영된 유선여관이 자리잡고 있다. 이곳은 또한 장군의 아들 1. 2. 3 가 촬영된 곳으로 한국영화는 두륜산도립공원과 함께 성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선여관은 1930년대에 지어진 여관으로 현재 전통보존가옥으로 지정되어 보수중이다.

- 입장료 : 어른 2000원(2000원), 청소년.군인 1500원(1200원), 어린이 1000원(800원)
..............( ) 안은 30인 이상 단체요금
- 주차비 : 승용차 1000원, 버스 2500원


이 유선여관은 위에 나온 것처럼 영화의 촬영지로도 사용되었는데, 그 여관이 필자의 친조부님께서 운영하시던 여관이었기에 더욱 깊은 감정이 녹여진다.

여튼 이 유선여관에서의 이야기는 다음으로 이어적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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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의 이빨~

<web 2.0 미디어를 위기상황에서 활용하기 위해서는?>을 보고 있으니까 이전에 군 복무시에 고참과 관련된 얘기하나가 생각난다.

국방일보에 났던 기사라서 검색해서 링크하려고 했는데 도무지 찾을 수는 없지만, 그 당시 고참인 전 중사와 그의 형제들은 군에서 복무중이었다.

그렇게 장관들과 오찬을 나누고 며칠후에 기사가 난 걸 읽는 순간에 필자가 함께 있었다. 기사를 읽더니 고참이 하는 소리

하여간, 기자들 이빨[각주:1]하나는 알아줘야한다니까.. 난 그 자리에서 한 마디도 안 했는데, '형님들이 함께 군생활 하시니까 든든합니다'라고 내가 말했데.. ㅋㅋ


뭐 대략 위와 같은 대사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1. 사실 원래는 입발이라고 써야 할 듯하지만, 당시 사용했던 용어를 그대로 사용합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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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화로 희생당하는 이들

각종 기계를 디자인하는 데 표준화가 필요했고 이를 위해서 더욱 오른손 사용이 장려됐다는 것이다.

필자의 주변에도 왼손잡이들이 꽤나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친근한 고모님의 따님되시는 누나를 예로 들자면, 우리 어렸을 때는 그 왼손잡이에 대한 인식이 매우 좋지 않았기 때문에 이 누나도 마찬가지로 양손잡이가 되지 않으면 안되었는데, 이 누나가 낳은 아들 둘이 모두 왼손잡이다.

얼마전에 밥을 먹는데 왼손잡이인 아이들을 오른손으로 밥을 먹게 이야기하려는 걸 보고 아직도 그런걸 신경쓰냐고 말했는데, 사실 요즘엔 왼손잡이에 대해서 그다지 우리 때만큼 인식이 나쁘지 않은데다 되려 좋은 인상을 줄 수도 있지 않겠냐는 이유였는데 또 그렇지도 않은가보다.

쨌든 이번 글을 쓰게 된건 인용된 글을 보고서인데, 표준화를 위해 희생되어지지 않으면 안되었다는 내용인데, 참.. 사람이라는게 아니 인생이라는게 어쩔 수 없는 희생이라는 것도 있다는 생각을 다시금 해 본다.

뭐 저 사람들은 자기가 원해서 왼손잡이가 된 것도 아닌데 말이다. 대의를 위해 개인을 희생하는 것이라고 말하기에도 힘들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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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절 불러요~

수업시간엔 자느라 못 들었던 것 같구, 동생이 시험 공부하면서 화장실에 가고 싶다라는 표현을 공부하는 걸 본적 있었다. 그게 여러 가지 표현이 있었는데, 오늘 문득 그와 관련된 에피소드 하나가 기억이 났다.

초등학교 3학년생이 일기를 블로그에 기록하는데 그 포스트들로 초등학교 3학년의 눈으로 보이는 세상을 잠시 느낄 수 있다. 그 중에서 다음의 일기를 보면서 생각이 나게 된 것인데, 아래 인용구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방문할 수 있다.

나는 안심이 됐지만 또 만약을 준비해서 똥이 마렵다는 말은 영어로 배워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처 : 상우일기

그 당시 동생이 공부했던 표현은 Nature calls me. 또는 Nature is calling.로 기억되는데, 이걸 보고 문득 기억난 건 그걸 직접 사용했던 기억이었다.

영어를 그대로 사용한 것이라고는 할 수 없는데, 화장실에 가려고 손을 들고는 쌤~ 자연이 절 불러요~ 라는 식으로 한글화해서 써 먹었던 기억이 있다.

물론 반에서는 최소 3차원 이상의 정신세계를 가진 친구로 인식됐겠지만, 나름 스스로는 즐거워했다.

그리고 쉬는 시간이 되어서야 친한 친구녀석들에게서 질문을 받고 답해줬다.

뭐 지금도 고차원의 사고방식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만들지만 그 당시에도 적잖이 고차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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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블로그를 시작했을까?

킬크님의 나와 Tistory와의 인연을 더듬어 보면...를 보면서 블로그를 왜 시작했을까로 생각이 이어지게 되었다.

제일 처음 블로그를 만든건 아무래도 싸이월드의 미니홈피이다. 미니홈피 서비스 초기에 흥미로 가입했다가는 그대로 방치해 두고는 미니홈피 열풍이 한 차례 지나가고 사람들이 점차 미니홈피에 시들해지기 시작하면서부터 다시 시작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왜 열풍이 지나고 나서 시작하게 되었냐면 사람들이 필자가 찍는 사진을 퍼가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지금 이 공간에 있는 글들을 보면 블로그 개설일보다 더 전의 글들이 있는데, 그 글들은 네이버의 블로그에 올렸던 글들이었다.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었던 것은 아마도 그저 기록을 남기기 위한 단순한 동기였다.

사실 그 뒤로 말년 이후 줄넘기와 체중 관련 글들이 주류를 이루었고, 그 후에 운동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되어서 흐지부지되었다. 그리고 이 공간으로 옮겨오기 전까지 미니홈피에 사진을 올리는 것으로 기록을 이어왔다.

하지만 이 공간에 있는 글들 중에 미니홈피에 올렸던 글들은 없는데, 아무래도 미니홈피는 계속 해지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고, 그다지 사진 외에는 글이라고 써 놓은게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티스토리의 초대신청을 미니위니에서 해 놓고 초대를 받은 후 바로 모든 글들을 옮겨 오고 예약을 통해서 올린 시간을 그대로 적용하여 글을 옮겨오게 되었다.

사실 이전 블로그가 테터툴즈였다면 별 어려움이 없었겠지만, 네이버 블로그와 파란 블로그에서 이동해야 했기때문에 일일히 수작업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쨌든 지금도 그다지 성실하게 포스팅하진 않지만 되도록이면 이삼일에 한 개 이상씩을 작성하려고 노력한다.

요즘들어서 킬크님의 자신과의 약속으로 1년간 하루에 한 개 이상씩 포스팅하기를 이루어내신걸 새삼 대단하다고 느끼고 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이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고민하게 되는 것은 방문자수나 어떤 사람이 방문했느냐 - 도 물론 중요하긴 하지만 - 보다도 글 솜씨가 얼마나 늘었느냐이다.

지금까지 이 블로그를 운영해 오는 목적 중의 하나가 글쓰기 훈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손가락 끝에 뇌를 옮겨놓고 글을 작성하는 습관을 버리지 않는다면 이 이상의 - 지금도 그다지 잘 쓴다고 생각되지는 않지만 - 발전이 있을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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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하는 일은 종종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어딘가 다닌다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었기 때문에 고등학교 때의 친구들과의 여행 기억은 그다지 많지 않은 편이다. 친구는 많지만 친한 친구는 몇 되지 않았고 그나마 그 친구들도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친구들이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고등학교 시절 전산반으로 활동했었는데, 선도부와 환경봉사부[각주:1] 친구들과 함께 어딘가로 갔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도착한 날 저녁에 누군가 술을 구해왔다. 소주와 맥주를 가져왔는데, 모두 모여서는 아니지만 각 인맥 집단별로 앉아서 간단하게 마시고 취해 있었다.

필자는 취기로 인해 기억이 끊긴다거나 기억의 오류[각주:2]가 없어 때론 곤혹스럽기까지 한데, 그 당시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취기가 올라 더워서였는지 평상 같은 곳에 앉아 있었다.

그 평상에는 다른 친구와 교제하고 있었던 여자 아이가 앉아 있었는데, 어떤 내용이었는지까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친구와 몇 마디 대화를 나누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다지 친하지도 않았고, 단지 지나다니면서 인사를 하거나 몇 마디 형식적인 대화를 주고받는 정도의 사이였다.

그런데 문제는 그 후였다. 그 여자친구와 교제하던 친구가 같은 반이었는데 자기 여자친구와 필자가 키스를 했다는 것이다! 단지 몇 마디 대화를 나누었던 것 뿐인데, 그걸 키스한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구나 싶은 생각이 뒤통수를 때렸다. 분명히 그 친구가 잘 못 본것이라고 계속 대답했지만 도무지 믿으려 하지를 않았다. 그 친구 얼마나 집요한지 한달 넘게 쫓아다니면서 그 문제를 두고 의심하는 것이다.

조금 더 지나니까 설상가상으로 증인 선배까지 나타났다!!! 자기가 둘이 같이 있으면서 키스하는 것을 봤다고 하는 것이다. 정말 억울하기도하고 황당하기도 했지만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아니라는 답변뿐이었다. 결국 한 달이 조금 넘는 기간동안 시달리다가는 그 친구에게 확실하게 말해주고는 일을 마무리 지었다.
  1. 각 반별로 청소구역이 있었지만, 그 외의 지역을 자발적으로 청소하는 봉사집단 [본문으로]
  2. 잘못 기억되어지는 것, 사실 그대로 기억되지 않고 다른 기억으로 대체되는 일 따위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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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욕장 횡포

을왕리 해수욕장을 찾았다가 왕산 해수욕장으로 가다를 읽다보니 고등학교 때의 에피소드가 생각나는데, 그 때 가족들과 함께 해변에 간 일이 있었다. 아마도 안면도의 어느 해수욕장인 것으로 기억된다.

이모부님의 고향이 안면도였는데, 배들이 있는 곳이 집이었는데, 그 곳 뒤쪽이 방파제가 있는 바다가 있었다. 그 건너편에 해변이 있었는데, 하루는 시간을 내어 해변에 갔는데, 문제는 그곳에서 발생되었다.

해변에서 천막(텐트)을 치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나타난 젊은이 - 물론 필자보다는 나이가 많아 보였다 - 두 명이 오더니 자리값을 내라고 했다. 그 둘이 왔을 때 모레들이 필자의 몸을 덮고 있었는데 황당함에 고개를 올려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이전에 해변에서 자리세를 받는 사람들이 있다는 얘기를 뉴스에서 접했는데 그들이 그런 사람인가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그래서 아저씨들이 뭐하는 사람들인데 자리세를 받아요?라고 항변했더니 해변이 자기들의 땅이고 그렇기 때문에 자리세를 받는다고 했다.

대번에 들어도 말이 안되는 이야기가 아닌가. 사유지라면 그런식으로 영업을 할 리도 없지 않은가. 2년 전 쯤에 남이섬에 사진 촬영을 위해 간 일이 있었는데, 정말 철저하게 사유지라는 것을 느끼게 할 정도로 비싼 입장료와 주차요금을 내었다. 사유지라면 그곳이 나머지 기간에 운영될 정도로 요금을 받아야 하는게 맞다고 생각되지만 그곳의 해변은 엉성한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대답을 듣고 그럼 땅문서나 영업이 가능한 증명서류를 보여달라고 했다. 이미 필자를 덮고 있던 모레들은 그들의 친구들과 만나 있었고 얼굴은 붉게 타고 있었다. 그렇게 소리를 지르고 난 후의 그들의 행동은 마음속으로만 했던 그 생각이 맞았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그리고 사라졌고 다시 우리들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접근하는 것은 목격할 수 있었다. 생각같아서는 쫓아가서 영업행위(?)를 방해해 주고 싶었지만 가족들의 만류로 참았다. 그들이 순순히 물러간 것은 중학교 3학년 때 가지게 된 엄청난 덩치덕이었다고 생각된다.

아마도 그들은 그 동네에 사는 청년들이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여름에 오는 피서객들에게 돈을 그런식으로 갈취해서 뭘 하려고 했을까. 생각하고 있는 그대로 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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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마시면 사라지는 사람들 2

제목을 보면 알겠지만 술 마시면 사라지는 사람들 1에 이어서 작성되는 글이다.

Pink님의 글을 보고 생각난 것은 사람들의 술버릇인데, 필자의 경우에는 고등학교 때 술을 처음 마셨다. 학원에 같이 다니면서 친해진 누나와 그녀의 남자친구를 만나게 되었는데, 어느날인가 술을 마시자구 불리워나갔다. 그 때는 그다지 술을 많이 마시지 않았었는데 웬지 그날만은 기분이 좋아서 벌컥 벌컥 마셨더란다. 그 누나 남자친구가 천천히 마시라고 했지만 주는대로 다 마셔버려서는 거의 둘이서 10병 가까이를 마셔버린 듯 했다. 그리고 노래방엘 갔는데, 약 1시간 가량의 기억이 없다. 그렇다! 별다른 술버릇이 없고 단지 잠만 잘 뿐이다. 필름이 끊긴건 평생에 그 때뿐인데, 그 이후에는 끊겨본 일이 없다.

그래서 군대에서 사람들의 술버릇을 관찰할 기회가 많았는데, 좀 정리해보자면 행동파, 수면파, 감성파로 나눌 수 있겠다.

먼저 행동파는 동작이 활발해져서는 평소와는 다른 모습들을 보이게 되는데, 아마도 술기운을 이용해서 평소에 발휘하지 못했던 것들을 표출하는 듯 했다. 주사가 심한 사람들이 보면 평소에는 드러나지 않았던 사람들이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데, 사실 이런 사람들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필자의 경우에는 군입대 후 약 2년 정도를 술도 안 마시고 놀았는데, 고참들로부터 얻었던 별명이 콜라한캔 X하사였다. 콜라 한캔만 시켜주면 술 몇 병이 들어간 사람처럼 논다는 의미 되겠다. 뭐 자랑아닌 자랑이 되겠는데, 이게 나름의 노력으로 이뤄진 성격의 변화이기 때문에 내성적인 사람이라고 변명하는 것은 그만두기 바란다.
행동파중에는 제목처럼 사라지는 사람들이 있는데, 바람 쐬러 나간다고하고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경우가 있다. Pink님의 글 중에도 3차로 이동하면서 사람들이 사라졌다고 하는 부분에서 이 사람들이 생각난 것이다. 이 사람들 회식을 정리하려고 찾아보면 내무실에 간 사람은 몇 명 되지 않았고, 어딘가 배수로에 빠져있다던가 화장실에 있는 경우가 많았다.

다음은 수면파인데, 필자가 이 분류에 속하겠다. 술에 취하면 잠이 들거나 꾸벅 꾸벅 졸게 되는데 명확한 과학적 증명을 알고 있는게 아니기 때문에 패스한다. 이 사람들은 그다지 술자리에 피해를 주지는 않지만 단 둘이 술 마시는데 이런 사람이면 좀 곤란하다. ㅡㅡ;;

그 다음은 감성파인데, 웬지 감상에 젖어지게 되어서는 울거나 웃어버린다. 웃는 사람은 시끄럽긴 하지만 그래도 나은편인데, 우는 사람은 정말 대책을 세울 수가 없다. 친구들을 많이 사귀면서 여자친구들이랑도 가끔씩 만나고는 했는데, 단둘이 마시면서 울어버리면 마치 죄인이라도 쳐다보는 듯한 시선을 받기 쉽상이었다. 다행히 필자에게 이런 경우는 거의 없었지만 이런 경우에는 얼른 집에 돌려보내버리는게 상책이다.

생각난 이야기를 한 페이지에 다 기록할 수 있지만, 웬지 너무 길어지는 듯해서 나누어서 쓰게 되었는데, 이번 글은 생각보다 좀 짧아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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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마시면 사라지는 사람들 1

아~ 먼저 이 글 미스테릭 포스팅은 당연히 아니다. Pink님의 블로그에 갔다가 옛날 생각이 나서 좀 적어본다.

먼저 제목인 방팅에 관한 것인데, 인터넷이 활성화 되기 전 통신을 하면서 이런 저런 사람들을 참 많이 만났는데, 초등학교때는 단순히 통신 상에서 사람들을 만나기만 했고 실제적인 만남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없었다. 겨우 장만한 컴퓨터로 전화연결이 되어 글 읽고 정보를 얻는 것으로 만족했기 때문이다.
중학교에 들어와서도 그다지 실제적인 만남이라고 할만한 것들이 없었지만, 중학교 2학년 때 서울에서 이사를 하면서 그다지 친구들이 없었기 때문에 통신에서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즐기게 되었다. 물론 통신을 이용하는 연령대가 지금처럼 폭넓지가 않아서 동년배의 친구를 알게 되는 경우는 좀 적었지만, 그래도 통신상에서의 만남이 즐거웠다.

아! 그러다가 중학교 3학년 때 나우누리 채팅방에서 동갑내기 여자친구를 사귀었는데, 몇 번 연락하는 것에 지나지 않고 진전되지는 않았다. 그러고 보니 여자친구를 처음 사귄게 이 때 였다. 그다지 진지하지 않아서였을까. 단순한 이성친구정도의 느낌 뿐이어서인지 일반적인 연애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인지 더 이상의 확실한 기억이 없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한 것이 고등학교 올라가서라고 기억된다. 나우누리에서는 여러가지 활동을 하기 시작했는데, PC를 이용한 개인적인 활동은 이미 중학교 들어서면서 시작되었지만,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만나기 시작한 것이 이때부터다. 그리고 중학교 3학년 때의 만남을 시작으로 동호회 사람들과 만나는 것이 활발해졌다.

하이텔도 그렇고, 나우누리도 그렇고 채팅방에 가면 항상 있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 채팅방에서 만나서 결혼까지 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있었다. 이건 분명히 필자가 알고 있는 경우에 한정되기 때문이 이전에도 몇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상하게도 천리안과는 인연이 없었다.

그리고 방팅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했던 것이 20살이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그 때보다 군에 가서 더 방팅에 활발하게 참여했다. 나름대로 방황하고 술을 많이 마시기 시작했을 때가 23살정도였는데, 월급도 꼬박꼬박 들어오겠다 두려움이 없었다. 그 때는 친구들과도 가장 활발하게 만나고 다녔는데, 친구들과의 연결점 역할을 했었다. 대게 친구들이 무리지어 노는데, 그 친구들과 모두 연락할 수 있었던 탓이었다. 하지만 이것도 점차 연락하는 사람이 많아질 수록 힘들어져서 지금은 연락을 정말 가끔씩만 하는 상태가 되었다. 무엇보다 서로가 바빠져서 연락이 뜸해지기 시작했다.

전역하기 1년 전인 2003년엔 아랫지방에 돌아다닐 계획을 세우고 경상도 지방에서 전라도 지방까지 순회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가 마지막이었던 듯 하다. 부산에 내려가서 전역한 친구와 연락해서 만나 한잔하고는 늦은 저녁이 되고 잘 곳이 없어서 PC방에 들어가서 부산 방팅을 찾았다. 그런데 이 부산 사람들을 만나면서 지속적으로 방팅을 하고, 놀 돈을 마련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 잠시 생각난 것이 있어서 시작했는데, 끝이 없다. 너무 길어서 둘로 나누어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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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과거사 2007/07/14 13:40

사람은 역시 잘 살아야 한다.

군대라는 곳은 여러 지방, 여러 환경에서 자라온 청년들이 모이는 장소이다. 여기에서 왜 남성이라는 표현을 안 쓰고 청년이라는 표현을 썼냐면 여성들도 부사관 이상의 계급으로 입대하여 군대라는 집단에 포함되어 활동하고 있고 여러 다른 환경에 영향을 받아 살아온 구성원이기 때문이다.


그런 곳에서 생활하다보면 정말 별별 사람들을 다 만날 수 있는데, 가만히 관찰해보다보면 김완섭이라는 사람 같은 사람도 있는 것이다.

       자신이 재학시절에 운동권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를 바로 보려는 후배들을 빨갱이새끼들이라고 매도하며 "내가 운동할 때는 순수 그 자체였는데 니 놈들은 김일성 자식새끼들이 되어 있다"는 주장을 늘어 놓았습니다. 학생운동의 정당성에 대한 논의는 차치하고 자신의 학생운동의 결과물이 바로 후배의 모습이라는 사실을 무시하고 "배신한 선배"가 되어 후배를 욕하는 것은 가당찮은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중략)

     이에 김완섭과 십 년 정도 차이가 나는 선배가 자신의 결혼생활과 삶을 얘기하면서 김완섭에게 충고를 하자 김완섭 "한물간 오렌지가 무슨 헛소리를 하는가?"라는 선배를 깔아뭉개는 글을 버젓이 올렸습니다.


미닉스님의 위의 글에서 보면 후배들을 욕하는 것은 물론이고, 선배에 대해서도 좋지 못한 발언을 하여 깔아뭉개고 있는데 저런 사람도 있다. 이등병 때에는 다들 그렇듯이 별 소리 하지 못하고 있다가는 - 아니 요즘엔 있을지도 모르겠다 - 일병 달때가 되어 고참들(상병, 병장)에 대해 욕하는 것은 기본이요 대하는 행동 보면 정말 자기는 결코 그런 인물이 되지 않을 것처럼 행동하지만 또 자기보다 아래에 있는 친구들 - 한달이상이라도 차이가 나는 후임들 - 에게는 자신에 대한 존경심을 표해주기를 바라마지 않는형이다.

과연 그런 후임들이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존경심을 표할까 싶다. 정말 병사들 중에서도 간부로서 봐도 존경심을 품게 만드는 친구들이 있었는데 그 친구들에게는 자연스럽게 이야기하고 상담하고 하는 친구들이 따르곤 했는데, 상대적으로 저 김완섭이라는 사람 같은 형의 사람에게는 기껏해야 동기들이 얘기하고 있거나 그나마 동기들도 함께 하지 않아서 후임들을 괴롭히는데 재미를 붙이고 있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물론 간부로서 몇 차례 경고를 하지만 그 때 뿐이다. 그게 또 영창을 보낼만한 수준 - 구타가 아니더라도 가혹행위로 - 도 되지 않는 소심한 수준이어서 어찌 권고 외에는 해 볼 도리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필자도 꽤나 엉뚱한 편이기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저 양반은 많이 지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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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에게

민노씨의 글을 읽어내리다가 아거셔스에 등록되어있따는 고종석 논설위원의 글을 읽으면서 문득 생각이 나서 옮겨 적어본다.
아래의 글은 제가 군입대(2000년 9월 1일)하는 날 아버지께서 전해 주셨던 시이다.

아들에게

네가 태어나던 그 해는 무척 더웠단다
5월의 함성이 틀어 막혔고
위로 가던 철도가 끊겼고
통하던 전화선이 잘렸기 때문에

세상이 싫었을까 두려웠을까
한달이나 늦게 나온 네녀석으로
의사의 가운은 오줌세례 받았고
우렁찬 울음은 할애비의 기쁨이 되었었단다

한해 두해 어느덧 스물 한해 9월
5월의 함성은 공원이 되었고
끊겼던 것들은 다시 이어졌는데
그 날의 군복이 우리를 가르는구나

싫기도 하고 두렵기도 한 세상을
너를 위해 십자가 진 예수님을 보면서
교관의 구령으로 대한의 남아되어
풍성한 주의 열매 맺으려무나.


필자는 1980년 7월 3일에 태어났는데, 출생지가 다름 아닌 전라남도 광주이다. 광주통합병원[각주:1]에서 태어났다. 다들 알다시피 5월에 시작된 항쟁의 시끄러운 세태로 인해 그 당시 광주에서 5월, 6월의 출산 예정이었던 아기들이 한 달 정도 이후에 나오는 경우가 좀 있었던 모양이다.

그 중에 필자도 포함되는데, 예정일인 6월 3일에서 무려 한 달이나 늦게 나오게 되었다. 나왔어야 할 시기가 지난 후 11개월에 출생하면서 의사의 가운에 소변을 보았다고 한다.

그 당시에 좀 우스운 일이 있었는데, 필자는 그나마 1달이나 늦게 나오면서 무려 12시간의 진통 후에 나왔다고 한다. 오전 9시에 진통이 시작되어 오후 9시가 넘은 시간에 나왔는데, 젊은 아빠[각주:2]는 그 긴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어머니의 동생에게 그 자리를 맡기시고 병원 앞 오락실에서 오락을 하고 계셨다고 한다.

신혼 부부들에게, 특히나 새신랑에게 흔히들 하는 말 중에 임신 중에 책 잡힐 일은 되도록 하지 말라는 게 다 이유가 있다. 3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종종 어머님은 그 이야기를 하시곤 하시기 때문이다.

당시에 이 글을 받아서 지갑에 넣고 육군훈련소와 부사관학교를 거치고, 자대에 배치받아 관사에 생활하면서까지도 몸에 가지고 있었다. 군생활 2년차 정도에 이 시가 들어있던 지갑을 통째로 잃어버렸던 적이 있었는데, 그 당시에 다행히 어떤 경찰분이 주워 보내주셔서 다시 찾았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모습은 여러가지로 권위적이었는데, 이 시를 접해서인지 조금은 다른 존재로 느껴지기도 했다.
  1. 현재는 광주 그 자리에 없고 수도통합병원이라는 이름으로 성남시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본문으로]
  2. 당시 아버지는 26세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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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요를 클래식 듣듯이 듣기

nonem_Blog에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에 대한 막심의 증언 포스팅을 읽다보니 중고등학교 시절 가요를 듣던 필자의 습관이 생각이 났다.
그 당시에는 가사가 있는 음악보다는 경음악 연주음악 중심으로 들었었다.
가사가 완전히 없는 가요는 거의 없기때문에 접할 수 있는 음악들을 들으면서 음 하나하나씩 컴포져[각주:1] 따위로 그려서 그 분위기를 따라 감상했었다.

그렇게 듣기를 몇년을 해대었지만, 늘어가는건 각 악기별로 분리해서 듣는 능력 뿐이었다. 그 음악에 대한 분위기를 제대로 잡아내기가 힘들었다. 점차 감각위주의 음악, 사람의 정신을 자극하는 음악들로 채워져 가고 있기에 힘들어졌다는 말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계기는 어떤 가수의 팬클럽에서 만났던 동갑내기 친구의 말때문이었다. 가사를 안 들으면 어떻게 그 곡을 감상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지금도 가사를 무시하는 경향을 완전히 버리지는 못했다. 음악 속에서 곡만으로 곡을 해석하려고 하지도 않지만, 가사를 완전히 적용시켜서 곡의 분위기를 지배해버리지는 않는다.

그래도 이전에 가사를 완전히 무시한채로 곡을 해석하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했던 것이 꽤나 그립다.

  1. 음악 작곡 프로그램 중의 하나로 도스시절 애드립 사운드 카드로 음을 낼 수 있도록 만들어진 프로그램이다. 케이크 워크 시리즈(소나)의 건반 화면과 유사한 구성을 가진 프로그램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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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과거사 2007/04/24 22:09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성교육

미디어몹에서 딱정벌레님께서 아드님의 성문제에 대한 글을 올리신 것을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고, 4편까지 올라와 있는 것을 알고는 새벽에 중간시험 기간 공부 중에 짬을 내어 읽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성교육을 시킬까라는 질문에 대한 간접답변정도로 참고할 생각이었다.

관련글들 :: 중1 아들 성교육하기 #1, 중1 아들 성교육하기 #2, 중1 아들 성교육하기 #3 , 중1 아들 성교육하기 #4

필자는 아직 미혼인데다가, 아직 결혼 예정도 없는 총각이지만 성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꽤나 관심있게 지켜보는 편이다. 자녀라는 대상에 고정되지 않은 관심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여타 총각의 관심과는 또 다른 차별성을 가진다. 이 관심은 여타 총각들이 가질 수 있는 관심으로부터 발생되었지만 지금은 그것에 조금 더 발전된 형태의 성에 대한 관심을 유지하고 또 유지해내려고 하는 중이다.

쨌든 다시 딱정벌레님의 이야기로 돌아가보자면 아드님께서 PC로 컬러풀한 장면을 감상하는 것에 놀라시고 그것을 계기로 아들의 첫 경험(?)의 교사와의 관계가 자신의 그것과 다름 없음에 안심하시는 모습까지 잘 읽어내려갔다. 그 부분까지 읽어 내려오자 필자의 머리에서는 내 첫 경험은 어떻게 하게 되었는가로 생각이 이어졌다. 아! 라고 생각한 순간 잠시 잠간의 정적이 돌았다. 필자의 경험은 그것과 달랐기 때문이다.

필자가 성에 대한 매체를 접한 것은 초등학교때의 일이다. 초등학교 2학년엔가 3학년엔가, 아니 4학년때 였는지도 모른다. 아버지께서 필자가 가지고 싶어하던 PC를 어디선가 구해오셨는데 그야말로 XT급 이었다. 그 당시에는 그 이상의 성능을 가진 PC가 사용되었던 시절이기는 했지만, 아버지께서는 집안 사정상 최신의 PC를 구매해주실 능력이 되지 않으셨다. 그렇기도 했지만 필자의 관련 지식은 그것으로도 만족할 만한 수준이었기 때문에 그것으로 행복했다.

나도 PC가 생겼구나! 라고 생각하고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났다. PC를 들여오고나서 변화된 것은 활동이 전보다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는 것과 PC화 동화된 삶을 살고 있었다는 것이다. 아버지와 어머님께서는 항상 바쁘셔서 동네에서 어르신들이 필자와 동생만 보면 부모님을 욕하고 있을 정도로 꼬질 꼬질하고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랬기 때문에 더 PC에 빠졌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PC와의 인연이 시작되었고, 곧 PC 통신과도 인연을 가지게 되었다. PC 통신이 시작되었을 때는 관련법이 제대로 정립되어있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말 그대로 통신은 무법천지였다. 뭐 그 나름의 서비스에서 정의하는 제한사항이나 그 비슷한 제지가 있을만한 짓을 초등학교 5학년엔가 6학년에는 해 본 기억이 없다. 그저 그 곳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자료들은 초등학생이 접하기에는 아직도 부담스러움을 느낄만한 것들이었다.

먼저 첫 경험의 교사와의 관계는 나 자신이다.

흔히 친구들이 알려준 방법을 해보는 것으로서 그 친구는 선생님이 된다. 자위에 대해서만큼은 그가 나보다 먼저 알았기 때문에 성립될 수 있는 관계라고 할 수 있다. 딱정벌레님의 아들의 성 3번째 글의 댓글에 개인 경험이라는 분이 올려주셨던 내용처럼 필자는 누구로부터 배우지 않았다. 이미 어떤 자료를 접하기 전에 자위를 시작하게 되었고, 그 당시에는 그것이 자위인줄 몰랐다. 성기가 손에 의해 자극을 받고 그를 통해 쾌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렇게 자위생활은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그게 나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고, 그것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기쁨이 그다지 중독성을 가지지 않았다.

야설을 읽다 걸린것은 치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각주:1]

당시에는 케텔에서 하이텔로 바뀌고 난 뒤인것으로 기억된다. 지금은 개인이 인터넷 서버를 운영하기도 하지만 당시에는 인터넷이 아니라 PC통신 서비스를 연결하기 위해 BBS 프로그램을 돌리기도 했다. 또한 Hitel 외에도 다른 경로들이 많이 생겼기 때문에 음성적인 방법으로 이런 저런 것들을 많이 구할 수 있었다. 속도와는 상관없이 음성적인 자료들은 어떻게해서든 수요자와 공급자가 있는 듯 하다. 야설은 그렇게 읽게 되었다. 사실 그 당시는 그림파일의 화질이나 수준이 그다지 좋지 않았기 때문에 야설로 많은 부분을 충당할 수 밖에 없었다.
나름 소설의 형태로서 조잡하지 않았던 소설들을 읽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그 텍스트 파일을 읽다가는 부모님들께서 들어오시는 소리를 듣고는 정리도 않고 그냥 PC를 다운 시켜버렸다. 그리고는 기억에서 까맣게 지워져버렸다. 야설을 읽고 있었다는 사실은 이미 전의식에서 무의식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그런데 며칠 후에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굉장히 정색을 하시면서 필자를 부르셨다. 이게 뭐냐고 하시며 PC화면을 가리키셨다. 모니터에는 이전에 부모님께서 들어오셨을 때 놀래 정리하지 않았던 파일이 텍스트리더와 함께 화면을 채우고 있었다. 물론 딱정벌레님의 아드님처럼 풀컬러판 화면은 아니었지만, 부모님들께서는 나름대로 충격을 받으셨다. 필자가 전에도 몇번인가 말했지만 아버지께서는 각목으로 필자를 다스리셨다. 그리고는 몇 대 맞을 것인지를 정하고 어머님은 잡으시고, 아버지는 때리셨다. 유일한 지원군인 할머님조차도 어디 나가신모양이었다. 그렇게 맞으니까 울게 되었고, 그것으로 부모님들은 이제 더 이상 야설은 안 읽는다는 약속을 받아 내셨다. 그 파일들을 제거되었다.

딱정벌레님의 글에는 필자의 부모님들께서 성에 대해 자유스러웠다고 댓글을 달아놨지만 초등학교 시절에서부터 자유롭게 해 주셨던 건 아니다. 그 후로 강압적이고 두려운 아버지는 어느새 필자의 친구와 같은 아버지로 변해계셨다. 어린시절 필자의 눈에 물을 만들게 했던 몽들이들은 이미 그 자리조차도 잃어버린지 오랜 시간이 흐른 뒤였다. 야설은 그만 읽었지만 자위행위만은 계속되었다. 한달에, 또 어떨 때는 2주일에 한번 정도로 자위행위는 계속되었다.

그리고 중학교 때 서울에서 부천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고, 친구들이 돌려보는 만화책을 보게 되었다. 필자가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좋아하게 된 계기가 된 골든보이(Golden Boy)이다. 원작 자체만으로도 좀 변태스러운 구석이 있는 만화인데, 그것을 또 다른 버전으로만든것이었다.
일본에서 만든것을 빨간모자 아저씨들이 수입해서 판매하는 것들이었다. 그것으로 다시 야설, 야사, 야동의 세계에 빠져들게 된다. 고등학교를 정보산업고등학교를 들어갔고, 학교에서는 인터넷을 무제한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물론 친구들이 있을 수업시간이나 모든 수업이 끝난 직후에는 힘들었다. 혼자 있을 시간에 잠시 짬을 내어 보기도 하고 했다.


인터넷은 점차 학교에서 집으로 더 빠른 방식으로 지원되었고, 좀 더 쉬운 접근이 가능해졌다. 지금은 그다지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지만, 야동, 야설, 야사는 실질적으로 이루어지기 어려운 허구적인것이라는 것과 보는 이로 하여금 더 흥분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 과장되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이전만큼 자주 접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필자가 중고등학생이라면 그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쉬이 접할 수 있는 것들을 아무런 비판의식이 없이 받아들이고 있지 않을까 싶다. 이런 이유로 성에 대해서 무조건 혼내거나 금지시키는 것보다는 공개적으로 가르치고 유도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자 여기서 부모님들의 성에 대한 개방도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다. 어린 시절의 그런 사건이 있었지만, 아버지는 성적인 표현들에 대해 다른 부모님들이 그럴 것이라는 필자가 가진 기준보다 더 개방적이셨다고 생각된다. 중학생이던 동생과 필자 앞에서 '자지'라는 표현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하셨던 것이다. 그저 고유명사를 말하는 것 뿐인데 그걸 천시하는 것에 대해서 오히려 이상하지 않느냐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주말의 명화와 같은 장면에서 키스 장면이 나오면 보지 말라던가 하는 말보다는 그냥 뽀뽀하는 건데 뭐 어떻냐는 식으로 우리들에게 말씀해 주셨다. 그리고 어머님께서는 간호장교 출신이시라서 의학적인 관련 지식을 말씀해 주시고는 했다. 물론 성관계나 직접적인 세세한 표현은 없었지만, 묻는 것에 대해서는 그대로 대답해 주셨다. 지금의 성에 대해 개방적인 생각과 굴절되지 않은 성 가치관은 부모님들의 이런 개방적인 행동에 의해 생겼다고 생각한다.

이것으로 성에 대한 관심, 처음의 경험에 대한 글을 마치려고 한다.
딱정벌레님의 연재는 계속되어 7편까지 나온것을 확인했지만, 개인적으로 약속드린 부분이라 미흡하나마 글을 남긴다.
  1. 히포크라테스가 정의한 기질 중 다혈질의 특징 중의 하나이다. 행동력을 뛰어나지만 치밀함에 있어서는 우울질에 비해 떨어진다는 것이다. 물론 필자는 두 기질을 동시에 소유하고 있기는 하지만 우울질보다는 다혈질이 더 우세인 듯 하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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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과거사 2007/04/16 00:11

자랑 거리

어르신들에게 자랑거리라는 것은 우리들이 보기에는 별 것 아닌 것들이 대부분이다. 손자 손녀들에게서 받은 작은 선물, 자손들의 깜찍한 인사들도 자랑거리가 되기 마련이다.

필자의 할머니께서 다른 할머님들과 함께 계시면서 하시는 말씀을 들었는데, 참빗으로 머리를 빗으시다가는 옆에 계시는 할머니께서 물어오셨던 듯 하다. 그래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어린 시절에 필자는 굉장한 장난꾸러기로서 이름이 부끄럽지 않을만큼 굉장한 사고뭉치였다. 그래서 어린시절의 필자 손만 지나가면 뭐든 쉬이 망가지곤 하였다. 할머니께서 사용하시던 참빗도 그 대상에서 예외 일 수는 없었다. 사실 그 빗을 망가뜨리려는 목적이 있었던 건 아닌데, 몇 번 빗고 하다보니 어느새 망가져 있었다. 그리고는 별로 신경쓰지 않았었는데 할머니께서는 나름대로 이리 저리 구하려고 하셨었나보다.

어느새 빗을 망가뜨리고 나서 20여년의 시간이 지나고 필자는 군에 입대했고, 고참들과 함께 속초에 놀러가기로 했는데, 미시령으로 지나다가 관광상품을 파는 곳에서 참빗을 보고 기억해 냈다. 어린 시절 할머니께서 자주 쓰시던 참빗, 필자가 몇 번 빗어버리고는 망가져버린 참빗. 그래서 얼마후면 나갈 외박에 할머니께 선물해 드리기로 하고 구입했다.

그리고 며칠 후 외박기간에 할머니께 가서 짜잔~ 하고 선물해 드렸더니 아니 이걸 어디서 구했냐고 하시면서 놀라시는 것이다. 물론 필자는 문득 생각나서 할머니께 선물해 드린거지만 할머니는 나름 그 이후로 주욱 찾으려고 하셨던 모양이었다. 그 옆에 계시던 할머님께서 종로에 가면 구할 수 있는 물건을 그리 어렵게 찾았냐고 타박하셨지만 할머니께서는 손자가 사다드린 그 빗으로 여전히 빗고 계신다. 그리고는 틈이 날 때마다 자랑스러워 하신다.

옆에 계시던 할머님 말씀처럼 종로 같은데 가서도 쉬이 구할 수 있는 물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흔해빠진 빗들일 지라도 손자로부터 받은 그것과 비교할 수 있을까.

할머니께서는 돌아가시는 그 순간까지 그 추억이 담긴 참빗을 사용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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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과거사 2007/04/14 01:03

아무 생각 없는 고딩이었을지라도...

나에게는 기댈 곳이 필요했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컴퓨터 말고는 아무런 생각도 필요하지 않았다. 오직 그것만이 필자에게는 흥미를 가질 수 있는 분야였고, 미래라는 것을 꿈꿀 수 있는 분야였다. 그만큼 필자의 컴퓨터에 대한 의존도는 높았다. 의존도라기보다는 그것밖에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러던 중 필자에게는 천사와도 같은 존재가 나타났다. 천사로밖에 설명 할 수 없는 그녀가 나타난 것이다. 피부는 백옥보다 더 하얗고 통통한 그녀의 모습에 마음까지 KTX로 질주해 왔다. 그리고는 3년을 좇아다녔다.

단지... 기대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기회는 허락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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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과거사 2006/12/09 00:24

취업, 그리고 피자 부페


정보산업 고등학교를 다녔고 진학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3학년 2학기 때 취업을 나갔다.
사실 선생님께서 컴퓨터 분야에 굉장한 관심을 가진 것을 아셨기 때문에 성수 역에 있던 하드웨어 조립업체에 소개를 해 주셨지만, 집이 부천인지라 출퇴근시간으로만 하루에 4시간을 소비해야 하는 엄청난 거리였기 때문에 면접만 보고 나왔다.

그리고는 며칠 지나지 않아 벼룩시장 구인란을 뒤적거리다가 웹디자이너를 구한다는 광고가 보여서 잽싸게 전화를 걸어 면접약속을 잡았다. 물론 가서 바로 취직됐다. 일하던 디자이너 누나가 턱이 빠지는 진풍경을 연출해서 재미도 있었고, 회사에서는 그 누나가 나가버리고는 대체 인력이 없어서 그 동안 그 누나를 잡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어린시절부터 그래픽 프로그램을 끄적거리며 습관삼아 가지고 놀았기 때문에 편집 능력은 뒤따라 주었다. 회사에서 요구하는 수준은 되었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취직을 했다.

그렇게 일하면서 몇개월 뒤에 서울에 시사저널 건물 디자인팀과 같은 층의 사무실을 사용하게 되었다. 사실 같은 공간안에서 파티션만 나누어서 쓰게 되었는데, BGI(Best Graphic International)라는 팀이었다. 그곳에서 디자이너 오정표형과 만나게 되었다. 99년 당시 28살이었는데, 군대를 전역하고 이러저러한 일들때문에 이제 일하게 되었다고 했다. 또 한명의 디자이너 누나는 김선아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당시의 본인의 실력에 비해 둘 다 실력이 뛰어났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쿽으로 편집디자인 했던 김성훈형이랑, 또 다른 사람들은 그다지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쨌든, 이 회사에서 인턴을 뽑아서 같이 일하게 되었는데, 이 사람들이 본인에게 굉장히 충격적인 일을 저질러 버렸다.
인턴들이 일하기 시작한 날에 퇴근시간이 가까워왔다. 본인은 할 일이 조금 더 있었기 때문에 앉아 있었는데, 그 두 사람이 와서 저희 퇴근하겠습니다. 라고 하길래 그러세요~ 라고 대답했다. 그리고는 이 사람들 아직 다른 회사라는 걸 모르는구나.. 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점심을 같이 먹는데, 인턴을 받은 회사 성훈형이 인턴들에게 어제 왜 둘 다 얘기도 없이 그냥 가셨어요? 라는 것이다.

그러자 이 분들 나한테는 인사하고 퇴근했는데? 라고 말하니까, 이 두 인턴들 막~ 웃는 것이다.

퇴근할 시간은 가까워오고 높아 보이시는 분들은 외근하셔서 안 계시고는 쭈욱~ 둘러보는데, 본인이 가장 나이가 많아 보였다고 한다. 그래서 본인이 제일 높은 사람인 줄 알고 이 사람한테만 인사하고 가면 되겠다 싶어 본인에게만 인사한 것이다.

그 말을 들은 본인은 (털썩~) 주저 앉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 당시 그렇게 살찌거나 하진 않았지만 패션감각이 본인도 좀 특이하다 싶을 정도로 하고 다녔는데, 그게 오히려 늙어보이게 한 것이었던 듯 하다.

쨌든 그곳에서는 그런 에피소드가 기억이 날 뿐이다. 또 한 가지는 책을 만든것이었는데, 아직도 교보문고에서 검색이 된다.

이 책은 당시 첫 회사 사장님이 미국에서 문서포맷으로 각광받기 시작한 PDF에 대한 서적이었다. 지금은 널리 사용되고 있지만, 당시에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포맷이었다. 이것으로 본인이 처음으로 편집디자인을 경험했었다. 사장님의 지시가 있었지만, 표지디자인에서 책 내용 편집까지 죄다 본인이 한것이다. ㅋㅋ.. 근데 지금 보니 표지디자인 굉장히 구려보인다.

또 이 회사는 프리랜스처럼 보이는 프로그래머를 고용하고 있었는데, 이 분은 삼성 훈민정음에 들어갈 PDF 부분을 개발하셨다. 이 프로그래머분 굉장히 나이 들어보이셨는데 지금 기억으로는 솔로셨다. 음.. 진짜 딱~ 보면 이 사람 프로그래밍하는 사람이라구나 하는 필의 생김새였다.

그리고 그 작업이 끝나고 함께 일하던 과장님이 창업을 할거라면서 함께 나가자고 해서 그 회사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같이 나가서 일하기 시작했다. 창업한 회사는 웹디자인으로 돈을 벌고, 다른 일을 준비하고 있었다. 창업된 회사 사장님은 폐쇄회로카메라 분야의 사장님과 동업하시기로 하고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오고 함께 일하게 되었다.

동업하시는 사장님은 제임스라는 영어이름을 가지고 계셨는데, 어느날인가 다른 직원들은 다 퇴근하고 제임스 사장님이랑 단 둘이 남게 되었다. 토요일이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사장님이 퇴근하고 같이 밥 먹자고 하시면서 좋아하는게 뭐냐고 물어오셨다. 물론 당연히 피자를 먹겠다고 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치킨, 피자이다. 짜장은 웬지 순위에서 어느순간 밀려나갔다.

피자를 먹으러 가는데 중학교때부터 초~ 대식가 기질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에 사장님께 피자부페로 가자고했고, 사장님도 그렇게 하자고 하셨다. 그 피자부페 그 이후에 몇년인가 지나서 그 자리에 갔더니 피씨방이 들어서있었다. 쨌든, 그곳에서 먹기 시작하는데 당시 피자헛 패밀리 사이즈를 혼자 2판 정도는 우습게 먹는 실력이었기 때문에 한접시, 두접시, ... 비워나갔다. 사장님은 나이드신분이시라서인지 두 조각인가 먹고는 먹는걸 구경하셨다.

그 피자 부패는 일반적인 부페하고 달리 손님이 앉아 있으면 구워나온 피자를 커팅해서 원하는 사람에게 주는 방식이었다. 그렇게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 한번에 한 조각씩 주었는데, 그렇게 10번째가 넘어가니까 이 알바생 본인이 앉은 테이블 주변으로는 오지 않는다. 더 앉아서 먹을 수 있었는데, 웬지 사장님께서 민망해 하셔서는 그만두고 나가자고 했다.

ㅋㅋ... 사실 그 때만큼은 못 먹어도 피자를 너~~무 좋아해서 금방 밥 먹었어도 피자시켜준다고하면 먹을정도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마린블루스 11월 28일 - 2.5기


아~ 이 사장님 뭐하고 사실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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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과거사 2006/11/29 06:54

인터넷을 처음 접하던 그 때..

과거에는 인터넷이라는 이름보다는 PC통신이라는 친숙한 이름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행했던 때가 있었다. 필자의 부친께서는 필자만큼이나 PC에 관심이 많으셨기 때문에 1993년에 처음 PC를 가지게 된 때에도 케텔을 사용할 수 있었다. 물론 그로 인해 전화요금이 엄청나게 나와서 혼나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상대적으로 엄청나게 느렸던 PC사양(XT)과 엄청나게 느렸던 속도(당시 제일 빨랐던게 초당 2400 비트, 300바이트, 0.29Mb)에서 잘도 사용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는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까지 컴퓨터는 오지게 사용했지만 인터넷을 흔하게 사용할 수 있는 여건은 마련되지 않았다. 초등학교때부터 컴퓨터에 미쳐있었던터라 이런 저런 것들을 많이 접해봤지만, 인터넷만은 일부 BBS에서만 텍스트 형태로만 제공하고 되었거나, 일부 통신사를 통해 연결하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중학교 중반이었던가 ISDN이 나와서 신청했을 때 정액제였던 걸로 기억되는데, 그 때부터는 조금 편하게 사용할 수 있었던 듯 하다. 그리고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는 학교 전산실에 설치된 전용라인을 통해 맘편히 사용할 수 있었던 것에 대단한 감동을 느꼈다. 실제로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전산반에 입반했는데, 작업을 핑계로 수업도 꽤나 빠졌고, 늦은 시간 - 대략 저녁 9시 또는 12시 - 까지도 인터넷과 네트워크 게임에 빠져있었다.

사실 그 시절의 인터넷은 정보의 바다라는 용어조차도 흔하게 쓰이지 않았을 무렵이라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지 않아서인지 정보의 순수성은 확보되었었다. 그래서 불편한 점도 없지는 않았지만, 원하는 정보는 꽤나 정확하고 성실한 수준의 것들이었다. 그런데 최근의 인터넷은 제대로 찾아보지 않으면 성실한 정보를 획득하기 힘들다. 물론 관련 정보에 대한 여러 사람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는 좋지만 그런 것은 정보를 획득하려는 사람에게 있어서 그다지 좋은 점이 될 수 없다. 정리하자면 접근성은 좋아졌지만, 원하는 정보를 정확하게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이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ZdNet의 기사를 훑다보니 과거 메일(인터넷)에 대한 약사가 나오는 중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어서 관련하여 적어보았다.

알만에 의하면 현재의 인터넷이 탄생 초기와는 크게 변화되어 신뢰할 수 있는 정보가 줄어들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신뢰할 수있는 수단으로서 메일을 사용하기 위해 앞으로도 보안을 계속 유지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은 분명하고 그 때문에 최대한의노력을 해 나가야 한다고.
출처 : 센드메일 개발자, “메일을 너무 많이 사용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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