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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생각 2012/04/12 14:52SKT의 일시정지 정책과 포인트 소멸 정책
KT의 경우에는 정확하게 언제부터인지는 찾을 수 없지만 일시정지 기간도 계약기간에 들어간다고 하네요. 이 얘기를 들은 게 제 아이폰에 대한 기간을 문의했을 때 들었던 것이라 2011년 11월 이전 인 것으로 생각되요.
KT나 SKT 상관없이 일시정지 기간 중에는 일정의 기본 요금을 내도록 되어있어요(두 통신사 모두 3천원 대). 그런데 KT는 계약기간에 들어가도록 해 두었고, SKT는 들어가지 않도록 해 두었지요. 뭐 다른 부분에서 이런 불공정함이 해소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일시정지 부분에서만은 SKT가 마음에 들지 않지요.
그럼 2년의 노예 계약이 일시정지 기간에 늘어나도록 하는 정책이라면, SKT에서 운용하고 있는 포인트들의 소멸 기한도 함께 늘려줘야하는 것이 아닐까 싶어서 말이죠.
확실하게 하기 위해 티월드 홈페이지에서 포인트 소멸로 검색해보니 레인보우 포인트의 경우 5년을 그 기간으로 설정해서 적립한 날로부터 5년이 넘은 포인트는 사용 여부에 상관없이 없어진다고 되어있지요. 2년 노예계약이 그 기간에 포함되지 않는 정책이라면 포인트 소멸 기한 역시 늘려줘야하는게 아닐까요?
통신사와 사용자 사이의 계약에 의한 기간 설정이라는 점에서 2년 노예계약 기간과 포인트 소멸 기간은 같은 선상에 있으니, 2년 계약에 일시정지 기간이 포함되지 않는다면 소멸 기한에서도 포함하지 않아야 하지요.
문득 일시정지를 하다가 생각나 끄적여 봤어요. 제가 잘 못 알고있는 부분이 있다면 지적 해 주세요.
참고로 아래는 티월드에서 “포인트 소멸”이라는 검색어를 통해 나온 결과를 화면잡기를 통해 참고 자료로 둘게요.
공지사항 / 5년경과 레인보우포인트 소멸 안내 / 2009.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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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생각 2012/04/12 02:35웅얼거림이라도 꾸준히
하지만 나중에 읽기를 해 놓고 나서도 시간이 짧지 않은 기간 동안 나지 않으면 시간이 훌쩍 가버려 글의 시의성은 떨어지죠. 블로그라는 매체가 꼭 시의성에 따라 읽지 않아도 되는 편 - 이라고 생각 - 이라서 대체로 무난하지만 가끔은 분류를 잘 하지 못해서 댓글을 달고 싶은 마응이 들게 되더라도 무척 망설이다가 결국 확인(Submit)을 누르지 못하고 탭을 닫거나 지워버리고 다른 글로 생각을 옮길 수 밖에 없었던 적이 적지 않네요.
그렇다고 댓글을 달지 않고 링크만 걸어두고 댓글로 적으려 했던걸 기록하고 트랙백은 하지 않는, 조금은 소극적인 방법을 쓰자니 뭔가 마음이 불편하고 말이죠. 그런데 적고 보니 이것도 나쁘지 않네요. :)
복화술로서의 블로그 - 민노씨.네
여튼 하고 싶은 말은 웅얼거림이라도 적고 공개하고 나아가서 발행하고 할 수 있는 용기가 있는 민노씨의 그런 기록들 속에서 민노씨의 작은 소망이 느껴져서 언제나 마음이 편하다는 거에요.
“소통”이라는 거대한 목적이 아닌 그저 표현, 미완성이나마 표현해서 정리하고 반응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그 행위가 이 세상을 밝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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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생각 2012/04/03 18:22새로운 티스토리 편집기에서 위치
지난 제 글들의 위치를 잘 보시면 지구 가 들어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새로운 편집기에는 위치를 그렇게 넣을 수 없어서 좀 아쉽네요.
물론 대한민국이 미국이 호주가 지구에 붙어 있는 것이 확실하고 누구도 다른 행성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게 분명하지만 뭐랄까 그 동안 할 수 있었던 것을 못하게 되어 기분이 좋지 않달까요?
이전 편집기를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건가요?
라고 쓰고는 검색해 봤더니 되돌릴 수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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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생각 2012/03/27 10:43교회 다니면 곧 성인이되는 것인가
사실 교회에 다니기 시작한 사람은 일종의 결심을 하게 되는데, 그것은 대체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기로 마음 먹게 되지요. 하지만 세상 일이라는 게 마음 먹은 대로만 되지 않는데, 마음 먹은 대로 행동이 변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으니까요.
교회에 다니기 시작한 지 얼마가 되었든지 사람에 따라 성화1가 된 정도는 차이가 있지요. 교회에 오래 다니더라도 자신의 이익에 따라 삶을 각기 행동을 정당화하며 교회에 다니는 사람도 있고요.
요즘은 교회에 다니기 시작한 지 얼마가 되면 집사 직분을 주고, 또 얼마나 기여하는가에 따라 장로 직분도 준다고 하더라고요. 술을 마시든지 말든지 그런 건 요즘 상관이 없는지 수 많은 집사님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술과 담배를 즐기고 불법도 생계의 이유로 그저 당연하게 행하기도 하지요. 진정한 회개를 하는 사람이 얼마가 되었느니 하는 깊은 얘기는 다음에 하기로 하지요.
이런 것들을 따지고 들면 끝도 없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사랑에 반한다고 할까요? 지난 저의 삶을 돌아봤을 때 약한 마음 때문에 수 많은 죄들을 지어오면서 자격이 되지 못한다고 자책하면서도 또 다시 죄를 짓는 모습들을 반복해왔음에도 예수님은 저를 사랑하신다고 하시니까요.
수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의지가 약하고 세상에 맞추어 살고자 하는 편으로 치우쳐있지만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어도 그들 각지의 깊은 곳으로부터 변화되는 모습은 불가능한 것이 아니니까요. 저 같은 구제불능의 인간도 변화시키신 것을 보면 전혀 가능해요.
자! 여기서 주제로 돌아가 보면,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다니기 시작하면서 성인이 되는 것이 아니에요. 더 확장해서 말하면 아무리 오래 다녀도 성인이 될 수 없다는 이야기지요. 성인이 그렇게 쉽게 될 수 있는거라면 우리가 성인이라고 부르는 많지 않은 사람들이 성인으로 불릴 이유가 없지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과 교회에 다니기 시작한 사람의 차이가 있다면 그 마음 속으로부터 자신을 성화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느냐가 기준이 되지요. 그런 마음조차 없이 교회에 다니기만 하는 사람도 분명히 있을테니 교회에 다니면서 왜 저런 어이없는 행동을 하는 것일까 라는 의문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면서도 당연할 수 없는 질문이라는 말이지요.
교회에 다니는 사람, 또 다니면서도 성화가 그 마음에 확고한 기준으로 자리 잡지 않았다면 교회에 다니면서도 자기 마음에 맞지 않는다고 폭력을 사용한다 거나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지요. 성인과는 거리가 멀 뿐만 아니라 교회라는 집단에 먹칠을 하기도 하지요.
요즘에는 목사라고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되요. 요즘의 목사라는 직분은 이 사회에서 요구하는 체계의 일련의 과정을 거치고 또 그에 요구되는 합당하다고 생각되는 행동을 해 준다면 무리없이 될 수 있는 거니까요.
그러면 어떤 위험을 가진 것일 수도 있는 사람을 지도자로 세울 수 있는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냐고요? 글쎄요 그건 다음 글에 적도록 하지요.
- 성화라는 것은 간단하게 말하면 성스러워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지요. 점차 예수님을 닮아간다는 표현으로도 사용될 수 있고요.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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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생각 2012/03/08 01:08비공개 글을 공개할까
비공개 글 중에는 전에 문제가 되어서 블라인딩 처리되어서 공개에서 비공개로 돌려 놓은 글도 있고, 또 완성되지 않아서 비공개로 남겨둔 글들도 있지요.
하지만 대체로 완성은 되었지만 스스로 마음에 들지 않거나 문제가 생길 듯한 글을을 비공개로 두었어요. 하지만 비공개로 남아있는 것을 보기 싫어서 조금 순화하여 수정하고 발행한다거나 하는 방식으로 공개하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개하지 못하는 글들이 꽤나 있거든요.
그 동안에는 비공개 글에 대해서 조금의 부담이 있었는데, 한동안 블로깅을 쉬다보니 그에 대한 부담이 없어졌더라고요. 뭐.. 달라진 건 전보다 게을러졌다는 것일까요.
그래도 뭔가 시작하면 완전히 중단하지는 않는지라 언젠가 기회가 되고 능력이 될 때 공개로 전환하겠지요.
작은 소망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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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생각 2012/03/07 09:56소통이라는 게
A가 B에게 말을 전달할 때 “물고기가 또 다른 물고기를 잡아먹었다”고 말했다고 했을 때, A가 말하며 생각한 것은 상어가 그보다 작은 물고기를 잡아먹는다는 심상이었는데, B가 들으며 생각할 때 피라냐 같은 것이 잡아먹었다고 생각한다면 진정한 의미에서 소통(Communication)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말이었어요.
그 말을 들은 게 소통이라는 것의 매력을 느끼게 해 준 것이어서 아마도 그 때 쯤부터 블로그에 글을 올리며 상상했던 것은 이러 저러하다 고 말하는 글에 댓글이 달렸을 때 그 글을 보며 다른 사람이 이것 저것에 공감하지만 이런 부분은 당신의 생각이 틀렸다 고 말해주는 정다운 장면이었어요. 그런 지적에 아~! 제가 틀렸네요 하며 자신의 오류를 고치는 그런 관계 말이죠.
제 마음 속에 어떤 심상을 가지고 있던지 현실은 시궁창이지요. 사람들의 상상과 또 그 이상대로 세상이 구현되었다면 과연 유토피아가 이루어졌을까요? 각자의 생각이 다 다르니까 그렇지 않을거에요. 하지만 여기서 더 나아가면 다른 길로 글이 새니 여기서 잠시 멈추고요.
상상했던 관계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글을 꾸준히 쓰고, 또 글을 쓰는 주제가 통일되었거나 해야하는데 이 블로그를 주욱 둘러보신 분은 쉬이 아시겠지만 그럴만한 건덕지가 없지요. 간혹 트랙백도 오가고 댓글로 오가기도 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그런 관계가 이어지는 경우는 없어요.
무엇보다 최근들어 외국으로 돌아다녔던게 글을 많이 올릴만한 상황이 안되었고요, 여행을 여유롭게 간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지요.
지금도 그런 소통의 관계를 꿈꾸고 있기는 합니다만, 사실 그 동안 관계를 맺어왔던 분들과는 좀 힘들지 않을까 싶기도 한게, 제가 시사 관련해서 지식도 없고 지금 뛰어들어서 글을 작성한다고해도 과연 찰진 글이 나올지도 모르고요. 찰진 글을 기대하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몇 년 전에 블로그를 시작했을 때만큼 얼굴에 철핀이 깔려있지도 않네요.
그 동안 알아왔던 사람들과 짧게 소식을 전하고 약속을 잡는다던가 하는 것에는 별 부끄러움이 소용없지만, 뭔가 전문적이지는 않아도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는 부끄럽거든요.
계속 소통에 대한 꿈을 가지고 있듯이 글을 잘 쓰고자하는 소망도 이어지고는 있어서 블로깅은 계속하지만 계속 할만한 무언가가 없다는 것이 지금 저의 문제네요.
결국 제목과는 상관없는 글로 마무리가 되는 듯 싶은데요. 제가 소통이라고 상상하며 기대하뎐 활돌을 지금은 하지 못한다는 것으로 결론을 내려야 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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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생각 2012/03/02 14:47뭐가 두려운걸까
지금 상황에서 두려워할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떠 오르는 것들이 많지만 그것들이 정말 두려워할 것인가로 생각이 이어지지는 않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전처럼 당당하게 뭘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고 있어요.
하아... 나이가 들면서 느는건 두려움 뿐인걸까요?\
아직도 인생 몇 년 살지도 않았는데 두려움만 늘어버린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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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생각 2012/02/27 18:12인생에 대한 신앙관
기본적으로 전 하나님께서는 전지정능하시다는 기독교 기본 신앙 바탕위에 인간 세상에 있는 모든 일들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것이 이루어 진다는 믿음이지요.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기에 아담의 선악과 선택 사건이 있었고 그런 탓에 인간은 원죄를 가지고 태어나고 살아가고 있지요. 이 글은 원죄에 대한 글이 아니기에 죄에 대한 부분은 이 정도로 넘어가야겠지요.
일단 모든 세상일을 계횎한 하나님께서는 한 인간인 제 인생에 대해서도 세밀하게 계획해 두셨지요. 그래서 제가 선택하고 받아들이게 되는 결과들도 이미 그 계획 가운데 있는 것이고요. 그래서 어떤 선택을 하게 되었을 때에 경험하게 되는 것들 모두 하나님꼐서 계획하고 계시다는 것이지요.
방송이나 어떤 행사를 치르기 위해서 작성되는 큐시트 같은 거랄까요? 어떤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했을 때 이러 저러한 것들을 해야한다거나 이런 저런 것을 해야한다거나 하는 것들이 이미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있다는 것이지요.
하나님께서 전지전능하시다는 것은 인간의 사고로는 이해될 수 없는 부분일텐데, 이런 한 사람의 선택과 그 선택결과에 대한 계획들을 작성한다면 아마도 찬송의 한 가사처럼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삼아도 다 적어내지 못한 만큼의 분량일 것이라 생각되요.
그런데 이런 한 인간 뿐 아니라 이 지구 상에 있는 모든 인류, 각 사람에 대한 계획들을 능히 가지고 계신 하나님이시니 그 전능하심이란 얼마나 대단한지요!
짧게 쓰려다보니 제대로 전달될지는 모르겠지만 인생에 대한 제 신앙은 모든 선택과 그 선택에 대한 계획은 이미 창세전에 되어있다는 것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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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생각 2012/02/27 18:05앞으로의 나아갈 길
물론 그 모든 길의 인도자는 하나님이라고 생각하기에 주저함 없이 달려갔지요.
그런데 이제는 서른이 넘고 또 결혼이라는 것을 해야할 나이가 되고보니 더 이상 그런 것에 안주할 수만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래서 전 제가 그동안 관심도 갖고 일도 해 온 방면으로 3년 정도를 투자하면 기반이 잡힐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미국에서 이러저러한 것들을 준비하고 한국에 들어왔어요.
그 동안 중요한 순간마다 하나님께서 제게 일깨워주신 방향들에 따라 왔으니 이번에도 별다른 말씀이 없으셨고 또 일면 긍정적인 응답도 있었으니까 여러 모로 한국의 일들을 정리해도 되겠다는 생각이었어요.
사실 앞으로 하려고 했던 것이 개인 사업의 형태이기 때문에 이후에도 마음만 먹으면 계속 도울 수도 있었겠지만 자리 잡는다는 것이 그렇게 호락호락하리라 생각되지 않았기에 더 이상 도울 수 없는 마지막이거나 몇 년동안 못 도울 거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이 부분은 기독교인이냐 그렇지 않으냐, 또 기독교인이더라도 어떤 신앙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이해할 수 있는 정도가 달라질텐데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 자세히 적도록 하고 지금 이 글을 쓰는 것은 더 이상 제가 원하는 인생을 살 수 없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에요.
요즘은 그저 저 혼자 떠드는 공간처럼 활용된다고 생각될 만큼 댓글도 없고 유입인원도 없는데도 이렇게 선포하듯이 쓰는 이유는 이렇게라도 해 두지 않으면 인간으로서 주어진 자유의지로 순종하고자했던 마음을 지속할 수 없을듯한 불안한 마음이 일기 때문이에요.
믿음이 부족한 탓이겠지요. 믿음이 가득했다면 하나님께서 이런 마음조차 잡아주시리라며 달려갔겠지요.
그래도 달려가야할 것은 저에게 주신 그 마음과 고백하게 하셨던 명령이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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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생각 2012/02/15 13:04소통을 위한 도구로서의 블로그
블로그라는 툴이 나오기 전에는 게시판, 웹 이전에 통신이라고 불리던 BBS에서의 활동을 통해 쓰고자 하는 마음을 가졌고요. 적절하게 표현하지는 못했지만 그 공간에서 생각을 글로 표현하고 글에 대해서 단순히 인사치례 뿐만 아니라 그에 대한 반응이 돌아오는 것이 좋아서였을지도 모르겠네요.
이러저러한 것들을 통해 다시 생각해보면 (지금의 공간 이전의) 블로깅은 누군가와 소통하기 위한 도구라기보다는 내 생각에 대한 평가를 바란 것이었다고 생각되네요. 글이든 사진이든 올린 것에 대한 평가를 내심 기다리며 올리게 되는 글이었죠.
그런 기대를 가진 것은 블로그 이전에 있언던 형태의 게시판들은 대체로 동일한 목적이 있는 사람들의 공간이었고, 또 그에 대한 피드백은 적절하게 들어왔고요.
공지에도 나와있지만 새로운 사람들과의 소통을 위한 공간을 희망한 적도 있어요. 하지만 저라는 사람이 지금 가지고 있는 인맥들과의 관계조차 어쩌지 못하는 일 중심의 사람이라 그런건 참 어려네요. 일을 맡으면 거기에 집중하느라 다른 것에 신경쓰는 것이 어렵거든요. 그 만큼 그 일이 집중되는 것은 좋고, 또 성과 또한 나쁘지 않았지만 그 이면에는 관계의 단절이라는 아픔도 있고요.
이미 이루어진 관계는 한국인의 특성으로 언제든 연락하여 회복할 수 있다고는 생각되지만 요즘 같아서는 그것도 쉬운일이 아니구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해요.
다들 바쁜 나이대이기에 그렇다고 생각해버리면 그만일까요.
아니면 더 이상 제가 관계를 이어나가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판단해버린것일까요.
조금 더 살아보면 답이나올지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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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생각 2012/02/10 10:34의견을 제시하는 것과 실상의 내가 노출되는 것의 두려움
여러 경로로 제가 알려지게 되니 제 의견을 표현한다는 것에 두려움이 생기더라고요.
cansmile로서의 나와 오프라인의 나는 다르다고 할 만큼 잘 숨기고 살아왔거든요. 의견 마저도 제한적이어서 꾸며서 거짓이라고 말할만큼도 아니고요.
그래서 더 조심스러워요. 댓글을 다는 것에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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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생각 2011/12/29 15:43요즘의 블로깅 라이프
글을 잘 쓰고 싶은 욕구를 실현시키기 위해 블로그를 시작했어요. 블로그 이전에도 다른 사람에 의해 작성된 글을 볼 수 있는 기회는 무척이나 많았지만, 블로그처럼 자신의 공간을 가지고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도구는 없었지요.
그저 PC통신 시절에 게시판에 글을 올리면 같은 동호회나 게시판에 들린 사람들의 단편적인 반응들을 즐기는 정도로 만족하지 못했어요.
책을 읽는 속도가 느리다는 포스트를 얼마전에 올렸는데, 글을 읽는 속도가 느리니 책을 읽는데에도 재미를 느끼지 못했어요. 그래서 전공이나 학교 공부에 필요한 책들만 읽게 됐고요. 그 외에는 동생이 빌려오는 만화책이나 보곤 했는데, 그나마 만화책도 동생이 보는 건 대화 상자가 많아서 무척이나 오래 걸렸던 기억이 나네요.
요즘들어 이 공간에 글을 많이 올리게 되는데, SNS에 올리기에는 개인적인 생각들과 그 전에 비공개로 남겨두었던 글들을 조금 정리해서 쓰고자 했던 말들만 적어서 공개해 버렸어요.
사실 글쓰기 연습이 필요하긴하지만 요즘의 글쓰기는 조금 더 정리하고싶은 욕구를 느끼기 때문에 시작한 거에요. 글을 쓰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지금까지 가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방향에서 조금 수정된 방향으로 이전부터 하고 싶어했던 일을 시작하기에 앞서 정리해야할 필요도 느꼈고요.
이제 며칠 있으면 서른 셋이 되는데, 다른 친구들은 이미 직장에서 자리 잡거나 있는 자리를 견고히 다지기 시작하는 나이대라서 부담이 되네요. 다들 결혼도하고 아이도 낳고 안정되어가는데 이제서야 하고 싶은 걸 하겠다고 시작하니 불안한 거죠.
그래도 하고 싶은 건 해 봐야한다고 생각해요. 아직 혼자이고 책임져야할 사람이 없는 이 시기가 아니면 제 성격상 용기내기가 쉽지 않을 거거든요.
정리해서 올리기를 연습해야하는데 오늘은 그저 떠오르는 걸 관련된 것만 작성해서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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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생각 2011/12/27 09:04내 마음의 벗, 그대는 날 떠나고
학교 다닐 때는 그다지 친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마음에선 친구로 여기고 소셜한 공간에서 친구로 맺어져서 소식도 나누려 글도 남기고 했는데, 오늘 확인한 알 수도 있는 사람엔 그 친구의 이름이 떠 있는거 있죠.
제가 착각한 줄 알고 이름연결을 눌러보았더니 그 친구가 맞더라고요. 그래서 또 다른 계정이 있어서 뜬 것인가 싶어서 이름을 검색해 봤지만 영문 이름과 한글 이름 어느것으로도 친구 검색이 되지 않는 것을 다시 확인해 버렸지요.
아~ 그리고 나서의 허탈감인지 무슨 감정인지도 불분명한 상태에 있어요.
그다지 소셜한 인간이 아니어서 전화도 자주 안하긴 했지만 최근엔 해외로만 돌아다녀서 그나마 소셜한 공간에서 인사라도 나누었건만... 이 전에 비해 단순해지고 찾기도 수월해 졌지만 그저 실수라고 하기엔 친구 끊기 과정이 간단하지만은 않더라고요.
정말 여러가지 생각이 들고 있어요. 그 동안 나라는 인간이 해 왔던 행태들을 다시금 돌아보고 있지요.
연말에 어울리는 행동을 적절한 순간에 하게 해 준 그 친구에게 심심한 감사의 말을 전해야하는데... 더 이상 전하지 못 할 듯한 이 기분은 어쩔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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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생각 2011/12/21 18:23배려하는 것이
배려라는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기회를 가지게 됐는데, 별다른 이유가 있어서라기 보다 저 자신에 대한 생각을 이어나가다가 문득 그런 기회를 가지게 된 것이죠.
블로그라는 것은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나가는 도구이면서 자신을 드러내기위한 공간임이 확실하죠. 그저 개인적인 기록 공간으로 쓰기에는 부적절한 공간이라는 소리고요.
그렇다면 누군가 본다는 것을 밑에 깔아놓고 적어야한다는 말인데, 그 동안 많지는 않아도 찾아주신 분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어 몇 자 끄적여 보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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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생각 2011/12/08 15:16부자 교회를 향함
교회가 헌금을 사용하는 방식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 생활 중 만났던 친구 한 명은 제가 목사의 아들이라는 말을 듣고 그럼 집에 여유 좀 있겠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전 목사의 아들이지만 집이 부유하지 못해요. 중학교 때 개척하시고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십여명 되는 적은 교인들과 목회를 해 나가시는데, 다들 여유롭지 못하고 또 헌금을 관리하는 방식도 위의 글에서와 달리 각기 분류에 맞게 쓰도록 하거든요.
얼마 되지 않는 선교 헌금들을 모아서 일부라도 선교사님들에게 전달하고 있고요. 각기 분류에 맞는 헌금을 사용하시려는 노력이 보지 않으려해도 볼 수 밖에 없는 위치에 있으니 드리는 말씀이지만, 부모님을 보면 목사 사례금으로 들어오는 돈들 마저도 공과금을 내고나면 거의 없어서 중고등학교 때 용돈이라는 것을 정기적으로, 아니 그다지 받아본 기억은 없네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전 부유한 집안의 아들이라는 오해를 종종 받아 왔어요. 그런 오해가 교회, 목사의 아들이라는 확실한 연결점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시각이 최근의 일이 아니라는 사실에 부연이 되겠지요.
부자 교회들의 그런 방식의 돈 씀씀이는 문제가 됩니다. 물론 세상 사람들이 보는 것에도 문제가 되지만 무엇보다 교회의 존재 이유에 문제가 되는거죠. 교회는 그 존재 목적이 하나님이어야 해요. 하나님의 앞에서 그 존재가 이어져가고 또 그의 영광을 위해서 각기 일을 해 나가야하는 거죠.
그렇다면 위의 글에서 언급된 헌금의 사용 용도들을 그 존재를 위한 필요악이 아니냐! 는 질문이 던져질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그건 인간들의 욕심이고 또 그 욕심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자 한다고 정당화하는 거죠.
이런 글이 교회의 평판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고 있지만, 도드라지는 교회들 대부분의 그런 교회들 가운데에서도 꿋꿋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받들고 기도로 나아가는 수 많은 성도들이 계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또한 쓰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하네요.
그렇다면 믿는 사람으로서 부자 교회를 똑같이 비판만 해대고 있어야 하느냐! 정신 차리라고 헌금 내지 말고 퍼나르고 어렵게 만들어야 하느냐!
아니오! 우리는 믿는 사람들이고 믿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주님께서 말씀하셨듯이 기도해야죠.
제 부모님께서 기도로 살아오셨고 기도해봤자 뭐가 되냐는 비난과 조소 가운데서도 기도가 이루어져 가는 모습들을 보아 왔으며 보고 있고, 볼 것이기 때문에 드리는 말씀이에요!
기도는 믿는 사람의 호흡과 같거든요.
여러분 우리 기도하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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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생각 2011/09/11 13:16목사의 부도덕과 하나님의 심판
세상은 악해져가고 그 중에는 사실이 그러한 것도 있고 또 한편으로는 입소문에 의해 부풀려진 것도 있고요.
저는 하나님의 심판하심을 믿는 사람 중에 하나에요. 하나님 앞에서 제대로 서지 않은 부도덕한 목사들의 심판 역시 하나님께서 하신다고 믿고 있으며 그렇게 보아오며 자라왔으니까요.
하지만 그 심판은 목회자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는 사실 역시 말씀드리고 싶네요.
최근의 한 사건으로 여전히 마음이 아픈 가운데 글을 끄적였다가 비공개 해 두었는데, 이제서야 공개하는 것은 아마도 이제 그 심판이 어느 편으로 향할지 보이기 때문이라고만 적어둘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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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생각 2011/02/17 13:01발효와 썩은 것 -
저는 홍어를 좋아하는데 다략 일주일 정도는 삭혀야 제가 좋아하는 정도의 홍어가 되는데, 이 정도 쯤 되면 일반인(홍어회를 즐기지 않는 사람들)이 먹기 힘든 상태가 되죠. 조금 더 삭혀서 먹으면 더 맛있지만 그 이상을 삭히면 일단 주변인에게 피해가 되기에 되도록 자제해야해요.
그전에 2010/01/09 - [나의/일상] - 외조부님과 홍어에서도 말했는데, 이 쯤되면 썩은 걸 왜 먹냐? 는 말까지 나오게 되지요.
낫토에 대한 Q & A에 나온 것처럼 사람에게 유익이 되도록이라고 하면 그저 제가 먹기 좋게 변했다는 것만으로도 발효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요? 실제로 삭혀서 먹는다고해도 배탈이 나거나 두드러기 같은 현상이 나지 않으니까요.
두리안 얘기는 왜 나왔는가하면요. 두리안은 이제 막 열매가 떨어져서 먹어도 좋지만 일정 기간을 숙성 시켜서 먹으면 그 맛이 무르익어서 그 맛과 향이 대단한데요. 숙성 시켜서 먹으면 맛은 더 좋아지지만 향이 홍어에 비할만큼이 되지요.
그렇다면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홍어나 두리안 양쪽 모두 다른 사람이 싫어할 만한 향이 나지만 사람에게 해가 되지 않고 만족을 주게 되는데, 이 두 경우 모두를 썩었다고 보기에는 힘들지 않나요? 후후
문득 글을 보다가 번뜩 생각이 나서 적어봤는데, 이거 영~ 낫토랑은 전혀 상관은 없는 듯도....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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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생각 2011/01/16 12:32이제 세상의 종말이 다가오는가
최근에는 정말 날이 너무 춥고 생전 눈 한 번 내리지 않던 동네에 폭설 때문에 도로 교통이 끊기고 항공기 운행은 결항되는 사태가 자주 뉴스에 보도되고 있지요.
그런 뉴스들을 접할 때 이제 정말 세상이 어떻게 되려는 걸까? 싶은 그런 생각이 들어요.
애니메이션 늑대비(Wolf's rain)에서 새로운 생명이 움트고 새로운 세상이 열린 것처럼 이 세상에 있는 인간들이 모두 죽어 자연 생태계가 몇 백만년이나 흘러서라도 복구될 날이 올까요? 인간의 이기가 만들어 낸 이 급격한 환경 변화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정말 없는 걸까요?
그저 세상의 끝을 관망하며 더 이상 숨 쉬기 힘든 환경이 되어서야 이런 노력들이 결실을 맺게 되었다고 만족하는 그런 인간이 올 지도 모르겠네요.
더운 것보다는 추운 쪽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어요.
하루가 다르게 여름과 같이 전기가 바닥을 치려는 이 때에도 기름 값에 붙어 있는 세금 따위 떼려고도 하지 않는 이 땅덩어리 정치인들이란... 자기 배만 부르면 된다는 건지.
그 중엔 꽤나 쓸만한 기본 정신을 가진 사람도 간혹 있긴 하지만 뭐.. 그래봤자 흙탕물에 미꾸라지와 함께노는 진흙범벅이긴 마찬가지지요.
에혀... 언제쯤이면 이 나라가 제대로 돌아갈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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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생각 2010/09/10 00:11교회 다니기 전에 인간이 될 수 있나요?
경무님 말씀대로 기독교인들 중에는 정말 못 된 사람들이 적지 않아요. 배려심이 없어 교회에 다니고 있는 저 마저도 아~ 정말 저런 사람이 예수님 따르는 사람이 맞나? 싶을 때도 있어요. 사실 저도 제 욕심 때문에 그런 때가 없었다고는 못하겠고 지금도 더 남을 배려하려고 노력하며 살아가면서도 정말 난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있나? 라는 의문을 스스로 가지게 만드는 행동도 하지요.
기독교는 기본적으로 남을 섬기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있어 배려가 기본 덕목임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배려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먼저하고 오히려 섬김이라는 덕목을 강조하기 위해 이런 말을 할 때면 빠지지 않고 나오는 얘기가 그럼 우리는 맨날 속고 남들에게 맞춰주기만 하며 살라는 거냐 에요.
물론 그렇지 않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섬겨야하지요.
저 역시 모태신앙입니다만 의심도 적지 않고 워낙 꼴통부리며 몇 년동안을 살아서 부모님의 기도 제목이었어요.
뭐 이건 부모라서 그렇겠지 하고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그 기간 중에는 강하게 소리지르거나 하시기보다는 가벼운 권유 정도의 말만 들었지요. 부모님 자랑이 아니라 다른 분들을 위해 기도하시고 도와주시는 모습들하며 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시는 모습들을 보면 섬긴다는 건 저런건가 싶었어요.
아 샛길로 빠지는 듯한데, 기독교인은 처음부터 그 도를 완전히 익혀 어떤 경지에 이른 사람들이 아니라는 거에요. 그냥 자기 마음에 맞게 살다가 각자의 이유에 따라 모이게 된 사람들의 집합이라는 거죠. 그리고 기독교인, 교회가 자각할 것은 단지 수만 늘이기 위해 도를 가르치는 것에는 게을리 했다는 것이죠.
모인 사람들 중에는 댓글처럼 인맥형성이 주된 목적이어서 성경의 도에는 관심도 없는 사람도 있겠고, 그저 부모의 권유에 따라 다니기만 하는 사람도 있겠죠. 반면 자신의 죄에 대해 진심으로 회개하기 위해 매일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도 있어요.
제 아는 형님 한 분은 10대 중반부터 시작해서 삼십대 초반까지 건달생활하시던 분이 계셔요. 그 분이 정말 죽다 살아나셔서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으셔서 교회에 다니시고 하나님의 부름이 있어 신학교를 가시게 됐죠.
하지만 거의 이십년을 건달 생활을 했는데 바른길 간다고 해도 그간 살아왔던 생활방식이나 사고방식이 몸에서 떨어져나가진 않지요.
그 형님은 그것 때문에 괴로워하세요. 온 몸에 휘감았던 용을 몇 번에 거쳐 레이저로 지워도 완전히 지워지지 않은 모습을 보면서 괴로워하시지만 무엇보다 다 없어졌다고 생각하는 순간 이전의 행동 양식이 언뜻 나타날 때의 그 괴로움은 말로 할 수 없다고 하시더라고요.
정말 피터지게 노력해도 노력과는 별개로 무의식 중에 나오는 자신의 못 된 행동양식을 보면 그 정도가 이전만큼 심하지 않다더라도 놀라게 된다며 괴로워하세요.
대체로 이 정도까지 쓰면 뭐? 교회 안 다니면 건달 같다는 거냐? 며 따지시는 분도 계실텐데 제 말이 그런 의미가 아니라는 것은 경무님은 아시리라 생각되네요.
이런 얘기를 꺼내는 것은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그 도를 좇아야하는데 다른 목적 때문에 그렇지 않거나 몇 십년을 그렇게 살아와서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못된 습관이 나올 수도 있다는 거에요.
다른 종교도 마찬가지죠. 제 조부님께서 운영하시던 여관 위에도 유명한 사찰이 있는데 거기 계신 분들 중에도 수행을 열심으로 하시는 분들이 계신가하면 반대로 다른 지역까지가서 단란하게 놀러다니시는 분도 계셨으니까요.
기본적인 도를 좇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넣고 그 자기생각 범위를 점차 늘려가서 본질을 외면해 버리는 것은 인간이기에 생기는 문제겠지요.
어떤 종교를 믿느냐 믿지 않느냐를 떠나서 인간은 누구나 완전하지 못하니까요.
이렇게 얘기하는 저 조차도 모태신앙으로 삼십 여년을 살고 있지만 아직도 부족한 모습을 보일 때면 스스로 괴로워해요.
글 말미에 얘기하셨던 것처럼 기독교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문제니까요. 교회에 다니기 전에 인간이 되어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다반사고 그렇기에 더욱 노력하는 사람도 적지 않아요.
경무님처럼 부정적인 면만을 바라보지 않고 괜찮은 사람들도 살피는 사람이 있기에 힘을 얻고 신앙생활하네요.
뭐 글이 좀 길어졌는데, 교회 다니는 사람이기 전에 이 글을 읽는 여러분과 같이 불완전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생각해 주시고 그런 사람들 중에는 피터지게 그렇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도 함께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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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생각 2010/07/20 11:38내 돈 내놔!
그리스도인이라면 당연히 해야할 십일조 마저도 성경상의 근거를 찾아 반박하고, 그 근거가 타당하지 않다고 하죠. 그리고 더하여 십일조를 하지 말아야한다고 운동마저 벌이고 있지요. 저는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도 계시는 건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자유의지가 있기 때문이지요. 자유의지는 그에 따라 책임을 져야 한다는 당연한 순서가 기다리고 있어요.
눈에 보이는 현금이나 물건으로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기 위해 헌금을 드리는 건가요? 드릴거라면 마음을 다해 드리라는 거에요. 아까워하면서 헌금을 드리는 건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지 않기 때문에 드리지 않는 편이 낫다는 말이에요. 하나님께 그 마음과 함께 드려 그 헌금을 드림으로 하나님께서 기쁘시게하는 것이 헌금의 목적이지요 하나님께서 인간을 비롯한 이 세상 만물을 창조하신 것 역시 그의 기뻐하심을 위한 것이니까요. 안 내면 벌 받으니 내라 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닙니다.
이전에 군에 있을 때 고참에게 들은 이야기 중에 한 트럭 운전사의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현리에서 인제로 가는 길목에서 어떤 여자가 손을 흔들기에 무슨 일인가 싶어 세웠더니 인제까지만 태워달라고하여 태우고 출발했어요. 그리고는 멀쩡히 앉아서 있던 여자가 인제 시내에 접어들자 갑자기 옷을 찢고 소리지르며 뛰쳐 나가며 운전사가 자길 겁탈하려 했다고 사람들에게 소리치며. 결국 그 운전사는 재판을 통해 피해 보상을 해줘야 했지요.
이 이야기는 사람이 어떤 이유와 목적을 가지고 속이고 이득을 취하기도 한다는 말을 하기 위해 썼어요. 그 편이 이 편이든 저편이든 말이죠. 그 목적이 하나님의 뜻을 좇기 위한 것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인간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목적이라면 문제가 될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그에 합당한 대가를 치르겠지요. 지금 당장은 그들이 사람들의 눈을 속이고 그렇지 않도록 보일 수는 있겠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중심에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다 알고 계시니까요.
십일조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계신 분들 스스로에게 다시 한 번 질문해 보시기 바래요.
그리고 교회에서 이루어지는 재정의 사용들이 과연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만한 것인가 다시금 생각해보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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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생각 2010/07/19 23:17불꽃중앙교회에서?
그 가운데 강마리아 목사 사기 라는 검색어로 유입된 흔적이 있어 검색결과를 살펴보았습니다. 링크를 따라 검색 결과를 보면서 전에 부모님께서 강목사님 교회가 어려움에 있다는 소식을 얼핏 들은 기억이 났습니다. 그게 사기 건이었는지는 유입 로그를 통해 처음 알게 됐네요. 덕분에 목사님의 본명도 알게 되었구요.
검색 결과 중 제일 상단에 노출된 것이 **할렐루야! 빛된 예수!** - 이 사람을 보라!(수원 불꽃중앙교회 강마리아 목사를!)인데, 링크의 본문은 교회 19주년 감사 예배 사진을 메인으로 소망의 동산 등의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기 관련 내용은 댓글에 나오는데, 댓글의 내용은 대체로 시험들어 나와서 고통 받고 있다 거나 금전적으로 피해를 봐서 소송했으나 폐소했다 등의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댓글을 읽으면서 익숙한 사람들의 이름이 나와 마음이 아픕니다. 그리고 댓글을 적으시는 분들의 태도에 한 번 더 놀랍니다.
그 분들의 입장에서 보면 사기를 친 사기꾼이니 막 대해도 되는 사람들이겠지만, 제가 알고 있는 그 분들은 댓글에 나와 있는 행동을 고의로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가 아는 그 분들은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경외하는 마음으로 섬기시는 분들이시기 때문이지요. 이단성을 인간적인 측면에서만 판단하시는 것에 또 한 번 놀랍니다.
댓글을 쓰신 분들에 대해 정죄하는 내용을 길게 적었다가 얼른 지웠습니다. 실수는 저 같은 못난 사람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종들도 실수하지요. 어떤 행동이 오해되어 실수가 된 것일 수도 있고, 또 그것이 완전히 풀어지지 않아 골이 점점 깊어지는 상황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미천한 인간인지라 감히 정죄할 수 없어 하나님께 기도하며 어떻게 심판하실지 두고 보는 수 밖에 없겠지요. 그 분들이 사기꾼이면 과연 인간의 법으로도 하나님의 법으로도 심판 받을 줄로 압니다.
자! 어떤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지 함께 기다려보지요. 세월이 흘러 흐지부지 되더라도 추적하여 올리겠습니다.
올리지는 않았지만 링크 글에 달아놓으신 댓글을 캡춰해 저장해 놓았습니다. 물론 나중에 올리게 되더라도 닉네임 등은 처리해서 올리겠지요.
추 : 불꽃중앙교회에서 법적인 대응을 담당하시는 분의 요청으로 제목을 수정했어요. [2011-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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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생각 2010/07/19 18:10내가 해야할 일은?
※ 또한 상지대 관련 내용을 포스팅하는 이유는 이런 사실이 있다는 것을 알려 읽으시는 분들이 스스로 판단하시기를 바라기 때문이지요.
사실 전부터 관련 글을 쓰려했는데 기회가 닿지 않아 망설였는데, 이 기회를 빌어 작성하네요. 개인적으로는 교회에서 정치적인 의사를 밝히거나 교회가 정치 세력에 도움이 되는 것을 꺼려합니다. 이 모든 것이 욕심과 관련 있다는 생각이 깔려있기 때문인데요.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 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 하신 바라교회의 단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시는 분들을 욕할 수 없는 것은 그도 하나님께서 세우신 자이기 때문이지요. 그렇다고 비판하는 분들을 욕할 생각 또한 없습니다. 그 분들은 신념에 따라 행동하시는 거니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제가 그 행동들이 옳다 그르다 정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3장1절
저는 그리스도인을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이라고 정의합니다.
예수의 가르침의 내용은 해석하는 사람의 이해에 따라 여러가지로 갈라집니다. 그로 인해 분파가 생기고 또 그 안에서 쪼개져 있는 것이 기독교의 현실입니다. 그래서 위의 로마서 말씀도 예수의 가르침이 아니지 않냐는 분이 계실까 또한 조심스럽게 적었습니다.
여러가지로 해석이 나뉘는 것에 대해 말하면 또 그로 인해 싸움이 될까 싶어 명확한 것 하나만 말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한 가지는 그리스도인이라면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그러하셨듯이 내 뜻을 구하지 말고 아버지, 하나님의 뜻대로 해 달라고 기도해야한다는 것입니다.
-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쌔 고민하고 슬퍼하사
-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마태복음 26장 36~39절
좁게 해석하여 예수의 희생에 대한 것이 아니냐 하시면 또한 무능하여 답할 수 없습니다.
요점은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 지금의 우리는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몸소 하셨듯이 기도하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바라는 것이 그리스도인으로서 가장 현명한 행동이 아닐까요?
물론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셔서 개인에 따라 차이가 있고, 그렇기에 행동으로 움직여야한다는 분도 계시겠고 이런 상식도 없는 사람을 봤나 하시는 분도 계시겠지요. 하지만 그 분도 결국 그리스도인이라면 어떤 것도 하나님의 뜻대로 될 수 밖에 없음을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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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생각 2010/07/19 17:56상지대 구출 대작전
'희망21' 트윗 모꼬지
http://twtmt.com/cards/4062
위 모꼬지 페이지에 참여의사 밝혀주시면 더욱 큰 힘이 됩니다!
트위터러들께선 가입 한방!
방법 1 (필수). '귀차니스트'
(하나) 상지대 구출대작전 블로그 http://saveschool.net 와 트위터 http://twitter.com/saveschool 를 알려주세요!
(둘) 2010년 7월 23일(금) 상지대 지키기 촛불문화제(청계천광장 7시)에서 우리 사회에 여전히 상식이 건재함을 저 거만한 정부 여당에게 보여줍시다!
(셋) 7월 30일 사학분쟁조정위원회(사분위) 결정을 두눈 부릅뜨고 지켜봅시다! 김문기 구재단 비리인사는 상지대 이사가 될 자격이 없습니다! 만에 하나 그런 일이 벌어지면, 정부 여당은 물론 야당에도 엄중한 책임을 묻겠습니다. 그리고 이 중대한 사안을 방치한 언론들에게도 그 책임을 무겁게 물을 것입니다.
방법 2 (선택). '나는야 낭만주의자'
- 가장 기억에 남는 선생님
- 가장 기억에 남는 학교 친구
위 글감으로 글을 써주시고, 교육의 소중함을, 학교의 소중함을 되살려 주세요.
그리고 물론 방법 1. 세 가지(하나! 둘!! 셋!!!)을 더불어 옮겨주시는 것은 물론이겠죠? ^ ^
상지대 블로그와 트위터에 대한 관심, 23일의 촛불 문화제 참여, 그리고 7월 30일의 사분위 결정에 대한 엄중한 경고. 이 세가지를 꼭! 꼭! 함께 써주세요.: )
방법 3 (선택). '열혈네티즌과 블로거'
- MB 정부와 교육부 그리고 사분위(사학분쟁조정위원회)의 합법적인 야만을
- 그리고 정부 여당과 야당, 그리고 언론의 무관심과 무책임한 태도를 질타해주십시오.
- 혹은 상지대를 지키자는 우리 목소리에 추호라도 잘못이 있다면 그 잘못을 비판해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우리 자신을 깨워 주십시오.
격려의 목소리든, 애정어린 비판의 목소리든 경청하겠습니다.
물론 위 '하나/둘/셋'에 대해서도 꼭! 꼭! 꼭! 옮겨주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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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생각 2010/07/11 16:47소통의 욕구
블로그를 시작하면서도 그렇고 한창 아거님의 글을 읽으며 홍보라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대공중관계라는 용어에 관심을 글로 표현해내면서도 지금과 같이 소통은 하나의 욕구로 자리잡았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소통의 욕구는 인기나 명예 따위로 귀결되겠지만, 저에게는 그저 소박한 꿈입니다. 그저 사람과 사람의 만남. 꼭 얼굴을 보면서 만나는 만남이 아니더라도 말이죠.
하지만 그것도 여유가 있어야 할 수 있는거지요. 환경이 받쳐주지 못해서, 또 환경이 받쳐주더라도 시간이 허락되지 않는다면 불가능한 것이지요.
여전히 이전에 만나고 대화했던 짧은 인사로 시작되었던 관계들의 주체들과 나름대로의 관계를 이어가기위해 그들의 글을 읽고 팔로우해서 살펴는 보고 있지만 여러모로 허락되지 않고 있다는 핑계를 가지고 여전히 망설이고 있습니다.
민노씨의 말처럼 물리적인 한계치와 심리적인 한계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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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생각 2010/05/06 12:40오해
몸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도
사랑하던 친구와 나름 깔끔하게 정리된 관계임에도 몸이 떨어져 나가는 듯한 이별이었는데 그만큼 사랑했기 때문일까요.
하지만 그 친구는 다르게 이해해 버리더군요.
아무리 진심을 말해도 그 진심을 진심으로 받아주지 않는다면 그 진심은 아무 소용 없지요.
또 다른 인연을 만나 교제하고 있습니다. 부족한 사람을 믿어주기로 했다지요.
두 사람을 비교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진심을 진심으로 받아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비단 연인관계에서 뿐 아니라 일반적인 다른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진심을 진심으로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다른 사람의 진심을 오해한 적이 있었는지 다시금 생각해보며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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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생각 2010/03/31 23:27겁이 났을 뿐
단절을 유도하고자 하는 목적은 당연히 아니지만 그렇게 읽으시는 분들이 계신 모양입니다. 그래서 이 후의 글에는 해당 경고문구(!)를 넣지 않으려고 합니다.
해당 글들에 경고 문구까지 넣은 것은 단지 겁이 났기 때문입니다. 블로깅하는 많은 분들은 이미 이런 댓글들에 적절하게 대처하시며 감당하고 계시죠. 하지만 감당하려기 보다는 피하기 위한 방법이었죠. 좀 소인배스러운 행동이지요.
앞 서 작성한 모친과 관련된 글에 욕보이는 댓글이 달려 있었을 때 위로를 해 주시던 분들의 고마움 이후에 다시 한번 생각하고 마음을 다졌어야 했는데, 그 과정이 생략된 채 지금까지 지내왔기에 생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고 거를 것은 걸러야 겠지요. 두려움을 피하기 보다는 감당해 내는 것이 어른의 행동일텐데, 그런 면에서 보자면 전 아직도 어린 아이에 불과한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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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생각 2010/03/27 13:58희망의 기간
덴마 라는 네이버 웹툰에 보면 실버퀵이라는 회사가 나옵니다. 그리고 그 회사는 사람들을 잡아다가 자신의 몸이 아닌 다른 이의 몸에 정신을 가둬두고 계약 기간을 채우도록 합니다. 희망을 가지며 일을 하는 그들은 절망과 분노의 감정 뿐 아니라 그 희망을 향한 열망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회사는 결국 그들의 계약기간이 만료되면 소멸시켜 버리고 맙니다. 계약 기간 중에 있었던 일들에 대한 보안을 위한 조치일까요.
결국 그들은 이용당하다 죽어버리는 겁니다. 참 절망적입니다. 그 안에 있으면서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죽기 직전의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회사의 중요인물들이겠지요.
1년을 기다리고 이제 나가야겠다 싶은 마음에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가 다시 1년 "만" 더 채워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엄청난 절망감에 화가 나기도 하지만 또 다시 세워진 1년이라는 목표를 생각하면 희망을 가집니다.
과 연 이런 식으로 얼마나 사람은 희망을 가지고 살 수 있을까요? 학습하는 동물이기에 얼마 못 갈 겁니다. 두세번만 반복된다면 의심을 하게 되겠지요. 세 번도 많은 걸까요.
또 다시 1년을 기약하며 희망의 기간을 다시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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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생각 2009/04/01 23:15기록
방금 인생에서 가장 힘들게 이별한 이성과의 기록을 발견했다. 2002년 7월 20일에 작성되기 시작한 것이 지금까지 이렇게 기록이 남아있는 걸 보면 “가장 힘들게” 같은 표현을 쓸 만큼의 아픔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 기록이란 건 문자를 주고 받은 것을 한글 문서로 작성해 둔 것인데, 그 당시에는 문자를 저장해주는 서비스1가 없었기 때문에 일일이 한글로 입력했다.
저장하기 시작한 동기는 나중에 그녀와 몇 백일이 지나거나 결혼을 하게 되면 추억 삼아 함께 볼까해서 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 기록은 약 1년간의 연애 기간에 작성된 것이고, 무려 122쪽의 분량이다. 물론 온전히 문자를 주고 받은 것만 있는 것은 아니고, 중간중간 일기처럼 따로 작성해 놓은 것을 문자 기록 중간 중간에 삽입했다.
기록하는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아무래도 일주일짜리 야외 훈련2 기간의 일이다. 훈련 기간엔 PC를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문자를 나눈 것을 노트에 적어두었다. 훈련에서 복귀해서 한글로 옮겼는데, 작성하는 동안 부하들이 요상한 눈초리로 쳐다보곤 해서 조금 부끄럽긴 했지만 나름의 목표를 가지고 썼기 때문에 자부심마저 느꼈다.
쨌든 그녀는 나이에 비해 조숙한 편3이었는데, 내가 지금에야 깨달은 것들을 그 당시의 문자 대화에서 이미 언급하고 있다. 지금 문자를 살펴보며 그 때의 추억을 곱씹기도 하고 그녀의 성숙한 말들을 철 없이 흘려 보낸 것을 반성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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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생각 2008/08/08 00:57귀찮아
나의 경우에는 적잖이 사용했는데, 만사가 귀찮게 여겨질 때도 있어서 어떤 것을 하던지 귀찮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던 때도 있다.
언젠가 TV에서 드라마를 보는데 극중 할머니 분을 맡은 배우에게서 나온 대사중 하나가 귀에 띄었다.
어랏 저게 귀찮다는 말의 원래 말인가? 하는생각으로 금새 이어졌다. 그 당시에는 그 정도로 생각이 그쳤지만 그 후에 몇 번인가 이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귀하지 않다에서 귀치 않다를 거쳐 귀찮다로 줄어들었다고 추측된다.
귀찮다의 시작말인 귀하지 않다는 어떤 말인가. 귀하다 / 귀하지 않다는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를 가르는 말이고 가장 일반적으로는 어떤 행동에 대해 사용하고 있기에 그에 대한 가치가 낮다는 표현이다.
다른 용례는 접어 두고 이 글에서는 교회에 가는 것이 귀찮다는 것으로 글을 이어나가도록 하겠다.
교회는 종교적으로는 해당 종교의 신에게 일종의 행위를 하기 위한 장소를 말한다. 불교의 경우 사찰이나 법당, 힌두교나 기타 종교에서는 신전으로 부르기도 한다.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을 대상으로 예배를 드리기 위한 장소를 교회라고 한다.
교회에 가서 하는 일 중에 가장 큰 일은 예배(Worship)이다. 예배는 최고의 가치를 하나님 앞에 드리는 행위라고 일축할 수 있다.
그렇다면 교회에 가기 귀찮다는 말은 교회에 가는 것이 귀하지 않다는 뜻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교회에 갈 수 없는 상황에서는 귀찮다는 말을 사용할 수 없다. 귀찮아서 가지 못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갈 수 있는 상황에서 귀찮다는 말을 사용할 수 있다. 그렇다면 위에서 말한 교회에서의 가장 중요한 행위인 예배를 귀찮아하는 것으로 이어 갈 수 있겠다. 교회에 가는 것은 대부분이 예배를 드리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성경에서는 우리가 창조된 목적이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 그를 위해 지음 받았다고 기록되어있다. 예배를 드리는 것은, 즉 다시 말해 최고의 가치를 드리는 것은 사람이 창조된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행동을 귀하지 않다고 치부해버린다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죄가 아닐까.
교회 가기 귀찮아. -=> 교회에 가는 것이 귀하지 않다. -=> 예수 만나는 것의 가치가 적다.
교회는 모임의 장소 교제의 장소 예수와의 관계 정립의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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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생각 2008/08/03 07:14좌절 낙심
자신에게 실망하여 낙심될 때도 있지만
그런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을 인정하여 드리고 감사할 수 있다면...
In all your ways acknowledge him, and he will make your paths straight.
Proverb 3 : 6
Do not be anxious about anything, but in everything, by prayer and petition, with thanksgiving, present your requests to God.
Philippians 4 :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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